4장. 작가처럼 쓰기
순전히 겉모습에 취해 책을 고르는 경우가 더러… 아니 솔직히 말해 꽤 자주 있다고 실토한다. 책의 표지 디자인과 제목만 봐도 ‘음, 이건 분명 좋은 책일 거야!’라고 짐작해 버린다. 내용이 아닌 외적인 이미지만을 고려해서 책을 고르거나, 자신의 직관에 따라 경향적으로 책을 쇼핑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부류를 책에 '후킹 당한다'라고 표현한다. 굳이 사기를 당한다고 표현해서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 직감에 의존하는 쇼핑 습관이 거의 실패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덜컥 구입했던 책들의 대부분이 책장에 그대로 꽂혀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전시용으로 산 것이다. 내용을 확인해 볼 생각은 없다.
후킹: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고객의 이목을 끌거나 마음을 사로잡아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을 목표로 사용하는 업체의 상술 혹은 기술
출판사의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겉모습에 후킹 당하는' 고객이 늘어나야 출판 업계가 날로 성장할 텐데, 애석하게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꽤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아, 세상에, 이렇게나 신중한 사람들이 많다니! 가끔은 그저 아름다운 표지와 멋진 제목에 홀려 냉콤 책을 집어 들어야 인생이 조금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책의 외관과 제목은 어떤 자리를 차지할까? 책의 첫인상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요인이 구매 결정에 얼마나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는지는 알 수 없다.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왜냐, 그에 관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에 이끌려 책을 구매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표지 디자인과 제목이 즉각적으로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면, 그다음으로 확인하는 것은 목차의 구성이다. 목차를 보는 이유는 디자인적인 요소보다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항상 디자인만 보고 구매를 당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가끔은 현실적인 쇼핑을 할 때가 있는데, 주로 살림살이가 궁핍해질 때다. 그런 날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제목과 목차만 보고 구매하는 이유는 목차가 책의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목차는 각 장의 세부적인 내용을 미리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내 관심사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있으며, 책의 가치, 즉 내가 요구하는 높은 지적 수준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대충 목차를 훑어봐도 나는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직관력이 뛰어난 INFP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정운 작가는 '거꾸로 독서법'이라는 방법을 제안하며, 뒤쪽의 색인을 자세히 살피는 사람이 고수라고 했다. 색인에는 자신이 평소 관심 있어하는 주요 키워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색인을 기준으로 책을 검토하며 구매를 판단하는 전략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하수임이 틀림없다. 세상에, 표지와 제목만 보고 구입했으니.
이제 구매자의 입장을 벗어나 생산자의 입장에서 목차의 의미를 살펴보자. MoC(Map of Content)는 책의 목차를 의미한다. 작가 입장에서 목차는 보통 출판하고자 하는 책의 주제와 방향성이 결정된 후에, 출판사 측과 협의하면서 결정되는 편이지만, 목차의 구성은 전적으로 작가가 주도한다. 나는 지금까지 4번의 출간 계약을 성사시켰는데, 그동안 목차 구성을 출판사에 맡긴 적은 한 번도 없다. 책의 내용은 전적으로 작가가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갑인 것이다.
목차는 책의 큰 주제나 콘셉트가 결정되어야만 세부적인 내용을 잡아나갈 수 있다. 책의 주제가 명확하지 않거나 방향성이 결정되지 않았다면, 목차는 곧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큰 그림이 그려져야만 그에 따른 디테일을 추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목차라는 것은 그저 모래 위에 쌓은 성과도 같아서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큰 그림, 큰 주제라고 하니 이전에 언급했던 연역적 사고가 떠오른다. 연역적 사고에서는 먼저 전체적인 구조와 방향성을 잡은 뒤, 그에 맞는 세부적인 아이디어와 내용을 채워나가게 된다. 이처럼 목차는 단순히 챕터의 나열이 아니라 책의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을 담고 있는 중요한 설계도와 같다.
제텔카스텐은 작은 생각들과 아이디어를 모아 큰 주제를 연결해 나가는 귀납적 사고를 추구하지만, 작가로서 책이라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입장에서는 연역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제텔카스텐에 기록된 메모들은 저자의 경험, 독서 내용, 학술 논문, 아티클에서 얻은 작은 단위의 지식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메모들은 특정한 지식이나 아이디어의 단편일 뿐이다. 개별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못했기에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메모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아이디어 간의 패턴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이것이 귀납적 사고의 핵심이다.
연역적 사고에서는 목표가 뚜렷하게 결정된다. 예를 들어, 출판사와 '독서 에세이'에 관한 책을 쓰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해 보자. 작가는 책의 주제가 정해진 만큼, 이제 자신이 보유한 에피소드와 지식을 펼쳐서 목차라는 페이지에 모아 놓는다. 중심 아이디어를 마인드맵으로 설정해 놓고, 마치 달이 지구를 공전하듯 중심을 돌며 세부 주제를 배열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조에서 출발해 세부 항목을 도출하고 조직화하는 것이다. 책의 목차를 구성하는 일은 귀납적으로 사고한 결과물을 모아 실질적인 창작 단계로 돌입하는 것과 같다.
큰 그림을 그리려면 전체적인 구조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어떤 책을 원하는지, 시대의 기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직감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고, 작가로서 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독자들이 원하는 주제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가진 강점과 약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독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이해하며 지속적으로 자기 성찰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주제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거나 이론적인 배경이 충분하지 않다면, 독자는 나를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목차를 작성하려면 먼저 책의 주제나 콘셉트를 명확하게 결정하자.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여행 가방부터 싸겠겠다고 설치지 말고 말이다. 주제와 콘셉트를 명확하게 그린 다음 그 주제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제텔카스텐에서 찾는다. 제텔카스텐은 지식 저장고다. 만약 그 창고에 있는 메모가 10개 정도밖에 없다면, 창고부터 먼저 채우는 것이 급선무일지도 모른다. 빈 창고로는 성대한 파티를 열 수 없으니까. 물론 당신이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써왔다면, 그곳은 이미 아이디어가 가득한 또 다른 창고가 될 수 있다. 혹은 메모장에 적어둔 낙서들도 중요한 재료가 될 수 있다. 결국, 모든 길은 창작으로 통하는 법이다.
나는 여기에 '이키가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이키가이는 일본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삶의 목적을 찾고 자기 충족감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키는 삶을, 가이는 가치 있는 것을 뜻한다. 이키가이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 열정과 기쁨을 주는 활동
당신이 잘하는 일: 개인의 강점, 기술, 능력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 사회에 기여하거나 타인에게 봉사하는 활동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활동
위 네 가지 요소의 교차점에서 삶의 목적을 찾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요소들을 벤 다이어그램으로 시각화하는 것도 좋지만, AI를 통해 책의 목차를 얻는 아이디어로 활용하는 전략도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 글 쓰는 일, 노션을 활용해 의미 있는 템플릿을 제작하는 일, 문학 작품을 읽는 일
당신이 잘하는 일: 생산성 도구의 활용, 프로그래밍 능력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쓰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일: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고 싶다.
위에는 이키가이라는 방법론으로 사용해서 내 삶의 목적에 해당하는 4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봤어. 이 내용을 기반으로 책을 쓴다면 어떤 주제로 책을 쓸지 제안해 주고 목차도 기획해 줘.
아래는 이키가이에 간단하게 답한 이후, AI에게 책의 주제와 목차를 제안해 달라고 요청한 것의 답변이다. 네 가지 질문에 성의 있게 대답한다면 AI의 퀄리티도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책의 주제와 목차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댄스를 추고 있다. 아마도, 내가 결정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들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다. 글쎄, 어쩌면 이렇게 끝없는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즐거움이 아닐까? 어차피 모든 이야기는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 위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