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의 <니체의 인생 강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관심사는 외부의 환경에서 내부로 침전되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듯 흘러가던 삶 속에 놓인 내면을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열중하고 있을 때 기쁨을 찾는지,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보다 시급한 것임을 발견하고 있었다. 나의 자유의지는 어디엔가 묻혀있는 것이어서 좀체 찾을 수 없었다.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의 백윤식이 외친 충격적인 대사였다. 나는 돼지처럼 소비하고, 분노했다가 금방 잊어먹고, 또 개처럼 주인에게 충성만 하는 자유의지가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한 본능, 그 외압에 순종적이고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다가 내가 지쳐있고 더 이상 소비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고, 일상에 싫증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나의 시각은 내면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면 스스로가 원한,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외부로 밝히기 위한 일종의 서막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 어떠한 절대적 진리보다 앞서는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고, 그리고 사유하며 매 순간 흐린 판단을 하지 않도록 모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한 때, 내가 믿고 의지하던 종교적인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우선순위에서 하위권으로 밀려났을 때, 나는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며, 지나가버린 삶을 돌아보며 어디에서 참회의 시간을 가질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종교를 버리려 했고 또 버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완벽히 버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신의 빈자리를 남겨두는 방황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니체는 신을 인간 스스로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세속화의 물결에 흘러가며 물질적인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듯,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가치를 좇아갈 수밖에 없음을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할까?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대세였고 흐름이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자신이 강의하고 있는 대학교에서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거의 100%에 육박 - 저자는 공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하고 있다고 말이다.
"내 말을 들어라, 더없이 지혜로운 자들이여! 내가 생명 자체의 심장부 속으로 그리고 그 심장의 뿌리에까지 기어들었는지를 진지하게 눈여겨보라!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권력에의 의지도 함께 발견했다. 심지어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자의 의지에서조차 나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했다. - P.60
제 3 편에서는 권력을 이야기한다. 니체가 정의한 권력이란 나의 내면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내면에게 명령을 내리고 자유의지로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삶에 있어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이기적인 권력을 지향한다. 수천 년 동안 철학을 지배하던 형이상학에서 권력과 진리는 서로 대립적인 관례를 띠고 있었다. 권력은 영어로 'The will to power.'로, 번역되면 Will(의지)은 Power(권력)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을 나쁘고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지만, 누구나 권력을 갖고 싶어 한다. 과거에는 오직 신만이 전지전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나, 오래된 진리가 무너지며 권력의 흐름이 인간을 향하고 있으며, 인간의 내면이 가지고 있는 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력 지향점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권력은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는 권력을 설명하며 아래와 같은 문장을 주장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한번 살펴보자, 존재,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아라. 권력에의 의지에 불과하다. - P.64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 이전에 권력은 절대적인 진리인 신이 가지고 있었다. 절대적인 신의 권력 앞에서 인간은 일방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포했을 때, 인간의 관심사는 자신을 중심으로 이동되고 있었다.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권력의 핵심이다. 우리는 권력의 외면적 요소인 힘보다 내면적인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 위기가 닥쳐왔을 때,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은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권력에의 의지는 인간의 욕망, 충동, 생존, 삶에의 의지를 뜻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인 조르바는 내면으로부터 발현되는 내적인 힘을 믿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충동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확실성을 가지고 있었고, 인생을 살아갈 자신만의 권력에의 의지를 충만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삶의 의미는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방향을 정립하고 그것에 대한 질문을 자신의 내면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과정이다.
"오직 생명이 있는 곳, 그곳에 의지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생명에 대한 의미가 아니라 권력에의 의지라는 것을 가르치노라! " - P.66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 자유는 바로 권력에의 의지를 설명한다. 이 세상은 약자와 강자 두 가지의 집단으로 분류가 된다. 강자는 주인 도덕, 약자는 노예 도덕이라는 유형으로 분류가 된다고 니체는 설명한다. 강자라 할 수 있는 그들은 자신이 약자에 비해서 우월하다는 쾌감을 느꼈으며,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통일된 질서를 만들었다. 그러나 약자들은 억업받고, 늘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주인을 전복시키기 위하여 온갖 궁리를 하지만, 실제 강자인 주인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들은 결국 정신적으로 반란을 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감정을 '원한 감정'이라고 한다. 약자는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기 위하여, 자신의 가치를 보편화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생산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저자는 약자들이 스스로의 인권을 보편화하려는 행동을 두고 아래와 같이 설명을 했다.
무력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약한 처지와 무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가치를 우월한 가치로 포장하고 위장함으로써 살아남고자 하는 계략을 '무능의 간계'라고 말합니다. - P.72
권력은 누구나 소유할 수 있다. 자본주의 하에 방치된 무력한 사람들, 약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생존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약자들이 보호되어야 강자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고 살 수 있다. 서로 공생하고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비결인 것이다. 니체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서로 공생관계라고 설명한다. 주인은 하인의 봉사가 없으면 삶을 편안하게 영위할 수 없다. 하인은 그런 관계의 속성을 이용하면 자신의 권리를 취득할 수 있다. 따라서 권력이 악하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선입견이고 편견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가? 전 세계를 일주하며 방랑자 같은 삶을 살고 싶은가? 먼저 힘, 권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강한 의지가 동반되어야 하고, 단순히 할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는 곤란하다. 체계적인 훈련을 반복해야 하고 내실 있는 준비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 위하여 현재 고통을 주고 있는 공간, 즉 회사, 학교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절대 누릴 수 있는 가치는 아니다. 자유롭게 위해서는 먼저 힘을 가져야 한다.
권력 감정을 느껴야 합니다. 권력 감정은 자기 의지를 확인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음을 느끼는 거예요. - P.75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매일 확인하는 것, 각자의 역할, 회사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권력 감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현재의 수준보다 한 단계 넘어선 또 다른 미래의 모습을 위해 권력을 증대시키려는 꿈을 품는다. 항상 자신의 내면을 넘어서야 한다. 한 단계 더 도약하려고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야 한다. 권력 감정과 권력 증대의 욕망이 사라지게 될 때, 즉 더 이상 하고 싶은 희망이 사라져버릴 때 인간은 삶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다. 신이 사라진 세상에 힘이 없는 인간은 스스로 독립하기 위하여, 자생적인 힘을 길러야 했다. 권력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질투, 시기하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자신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하여 노력한다.
"너의 내면을 들여다봐라 그 자체가 권력에의 의지다. 그것을 직시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네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P.81
니체가 말하는 권력에의 의지는 결국 자신의 내면을 향한 의지라 할 수 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권력의 중심이 자신의 의지로 이동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권력의 의미를 잘못 남용하게 되면, 그릇된 방향으로 힘을 잘못 사용할 수 있다. 권력은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폭력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하여 사유하고, 생각해야 한다. 철학이 이런 생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니체의 철학뿐만 아니라, 다른 철학을 공부하고 삶에 있어서 철학적인 사유의 바탕이 된다.
니체의 사상을 잘못 이해하면, 그의 철학이 권력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의 불평등을 지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주장한 권력에의 의지란 절대적인 가치관, 전통적인 진리에 얽매이지 않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통한 개인의 행복을 성취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저편의 보이지 않는 존재에 기대어 그것에 의지하거나 자신의 내면이 아닌 다른 대상을 숭배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을 주장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 자신의 내면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통하여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오늘 당장 주체적으로 살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오늘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며 훈련하는 과정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자.
나에게 글쓰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