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Jazz, Cuba Percussion이 만나다.
내가 Jazz를 찾게 된 계기는 마치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듯이 다량으로 유입되는 기성 음악에 대한 싫증 내지는 반기 때문이었다. 자주 들었던 당시의 - 약 2000년대 전후 - 가요는 더 이상 실험적이지 않았으며, 기존의 인기에 편승하여 새로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가요는 움직임이 한 곳에 정체된 상태로 머물러 발전 가능성에서 오히려 퇴보하였고,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신해철이나 서태지는 예외로 한다. 대부분의 국내 대중음악들은 정체되어있었고, 대중의 인기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많았다.
팝은 어떠한가? 팝의 거장 데이비드 포스터와 같은 거물급 프로듀서의 아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 역시 보기 드문 상태였다. 나의 식성은 마치 시대를 뒤흔드는 거물급 인사처럼 너무 까다롭게 높아진 상태여서, 기존의 코드 진행을 단순하게 복사하거나 약간의 변형을 통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 비슷하기만 한 주류 음악들이란 것들은 실로 한심스러울 따름이었다. 이러한 음악의 상업적이며 반복적인 행태는 나의 까다로운 식성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단순함을 넘어설 수 있는 고전, 즉 클래식 음악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약간은 비스듬하게 멀리 서있는 클래식은 구조적인 관점에서 다가서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거 자체는 편안하고 마음의 안정을 회복시켜줄 수 있으며, 인간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폭제가 충분히 될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원인모를 가까이하기에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다. 물론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천재적인 작곡가들의 음악은 우리의 삶에 가까이 다가온 친숙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 세계를 깊게 이해하려면 클래식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과 '작곡가의 태생과 성장', '성향', '시대적 배경', '그의 인생' 등을 깊게 공부해야 하는 숙제가 필히 동반되었다. 나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부담이었고, 클래식에 대한 높은 진입 장벽이었다.
재즈는 클래식에 대한 부담과 약간은 가벼운 성향의 팝을 조율할 수 있는 중간 매개체의 성질을 가진 음악이었다. 재즈의 태생에 대한 이야기는 워낙 널리 알려진 것이어서 굳이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재즈는 인간의 자유롭고 구속당하고 싶지 않은 내면을 대표하는 음악이다. 재즈가 추구하는 것은 형식이 없는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이다. 인간은 또 다른 인간을 노예로 속박하고 그들의 삶을 제한했다. 오랜 세월 흑인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미국 땅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억압당했으며 착취 당했다. 그러한 삶을 견디고 미래를 희망할 수 있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 재즈가 추구하는 'Improvisation(즉흥)'이라 할 수 있다.
재즈는 먼저 단순하지 않아서 좋았다. 기존의 전형적인 코드 체계에 따라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형식대로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확 밀고 나갔다가, 다시 후퇴하여 잔잔해지기도 하고, 사람이 한자리에서 머물러 있지 않도록 적당하게 치고 빠지는 그들의 전술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우리가 길을 걸어가다가 두 갈래 길을 만나게 될 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겨우 두 가지뿐이라는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실망하게 되는데, 재즈는 이러한 일상적인 한계를 뛰어넘는다. 재즈의 특성은 한 가지 길을 세 갈래, 네 갈래, 아니 무한대로 가를 수 있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고, 적어도 까다롭고 싫증 나기로 유별난 나만의 식성을 만족시킨 음악이었다.
내가 재즈에 매료되어 정통 흑인 재즈를 처음 접하게 된 후,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뮤지션들의 이름을 따라 그들의 음악 세계에 귀를 기울었던 것은 일상에 지친 나의 삶에 대한 새로운 활력소이자, 기존의 음악에 식상한 나에게 신묘한 음식을 접하는 것과 같은, 눈이 번쩍이도록 감탄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멜로디를 머리에 각인시키며 계속 새로운 시도를 찾아 헤매는 도중에 우연히 찾은 뮤지션이 하나 있었다.
'Klazz Brothers'는 독일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크로스오버 연주자 들이었다. Klazz Brothers는 베이시스트인 '킬리안 포어스터', 피아니스트인 '토비아스 포어스터' 형제, 드러머 '팀 한'으로 구성된 3명의 Trio였다.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밴드 이름에서 알 수 있다. Klazz는 독일어인 Klassik(클래식)과 Jazz의 합성어이다. 그들은 클래식의 오랜 전통을 따르며 재즈를 클래식에 혼합시킨 독특하면서도 실험적인 음악을 꾸준하게 시도했으며, 그들의 매력적인 시도는 사람들의 눈길을 단순에 사로잡았다. 특히 포비어스 형제는 일찌감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며 그들의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명성을 쌓고 있었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로 쿠바 여행을 떠났다가, 자유분방한 쿠바의 라틴 재즈에 반하게 되었다. 그들은 쿠바에서 팀발레스 연주자인 '알렉시스 헤라라 에스테베즈'와 콩가 연주자 '엘리오 로드리게즈 루이스'를 만나게 되어, 'Klazz Brothers & Cuba Percussion'이라는 새로운 팀을 결성하게 된다. Klazz Brothers는 자신들이 추구했던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는 재즈 음악의 잔잔하면서도 평탄하기만 한, 음악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으로 라틴 재즈의 자유분방한 매력을 가미했던 것이다. 라틴 재즈의 풍성하면서도 흥겨운 리듬에 반한 'Klazz Brothers'는 자신들의 재즈에 낙천적 기질이 담겨있는 쿠바의 퍼커션을 양념한 새로운 음악적인 시도를 하며 자신들의 독자적인 세계를 완성하게 되었다.
내가 접한 그들의 첫 앨범은 2004년에 발매한 <Jazz Meets Cuba>였다. 첫 곡인 "Summertime - George Gershwin"에서 피아노는 혼자서 마치 사나운 파도 앞에서 그것과 사투하여 승리를 쟁취하려는 강인한 사내의 기상이 느껴진다. 피아노는 마치 타악기처럼 경쾌한 리듬을 타며, 베이스와 드럼을 리드하며 앞으로 앞으로 폭주를 한다. 뒤따르는 팀발레스와 콩가 등의 퍼커션은 묻힌 듯, 아닌 듯 자신의 위치를 묵묵히 지키며 피아노를 따른다. 중반 이후, 피아노는 자신의 여정을 잠시 콩가와 팀발레스에게 배턴을 넘긴다. 콩가와 팀발레스는 서로의 존재를 신나게 과시하며 자신만의 독주를 펼쳐나가다가 조용히 피아노에게 자리를 다시 물려준다. 조용하게 응답을 따르던 피아노는 다시 폭발적인 리듬으로 콩가, 팀발레스와 함께 연주를 마친다.
<Jazz Meets Cuba>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은 우리 귀에 익은 재즈 뮤지션들의 명곡들이다. 'George Gershwin', 'Duke Ellington', 'Charlie Parker', 'Antonio Carlos Jobim'등의 명곡을 전통적인 클래식과 라틴풍의 리드미컬한 타악기를 통하여 재구성하였다. 그들의 음악은 우리의 인생을 그대로 담은 것 같다. 격정적이며 찬란하지만 때로는 깊은 곳으로 침몰되기도 하는 인생의 높고 낮은 굴곡들을 앨범에 고이 담아내었다. 높은 곳에 도달하려면 항상 진취적인 기상만을 앞세울 수는 없다. 때로는 폭발적인 기세로 경쾌한 박자에 맞춰 전진해야 할 때도 있고, 잠시 숨을 고를 때는 낮고도 편안한 리듬으로 몸과 마음에 쉼을 부여해야 한다. Klazz Brothers & Cuba Percussion의 <Jazz Meets Cuba> 앨범은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나는 에너지가 필요할 때, 삶에 지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그들의 음악을 꺼낸다. <Jazz Meets Cuba> 앨범 이후, 그들은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한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 펼쳐나갔다. <Classic Meets Cuba>, <Mozart Meets Cuba>, < Opera Meets Cuba>와 같은 다양한 실험성 짙은 앨범들을 발표했다.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2악장 -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서 사용됨 - 을 편곡한 'Afrolero'는 그들이 연주한 클래식 편곡 중에서 가히 으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아래는 <Jazz Meets Cuba>의 수록 곡들이다.
01 Summertime - George Gershwin
02 Mambo Influenciado - Chucho Valdez
03 In a Sentimental Mood - Duke Ellington
04 Conception - Alexis Herrera Estevez
05 Samba Zamba - Tobias Forster
06 Los Amigos - Frank Emilio
07 Au Privave - Charlie Parker
08 So What - Miles Davis
09 Dynamita - Alexis Herrera Estevez
10 Girl from Ipanema - Antonio Carlos Jobim
11 Konga Solo Elio Rodriguez Luis
12 Mondongo - Frank Emilio
13 Elegia - Tobias Forster
14 Take Five - Paul Desmond
15 Reprise Summertime - George Gershwin
음악의 힘이란 실로 위대하다. 단 한 곡이 제공한 짧은 5분이란 시간 앞에서 나는 색다른 인생의 경험을 했다. 마치 독일을 출발하여 석양이 내려앉는 쿠바의 바닷가에서 잠시 그들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다가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찌든 삶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음악의 힘은 그러한 것이다. 일상의 괴로움마저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음악이다. 어쩌면 그들의 음악은 이미 우리 귀에 널리 익은 평범한 일상을 재편집한 활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또 다른 창조 앞에서 심장이 다시 강하게 춤추는 진한 감동을 되살릴 수 있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그들은 국내에도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펼쳐 국내 재즈 애호가들에게 나름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다. 재즈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그들은 친절하다. 클래식을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친숙한 재즈는 대중적인 이미지에서 멀지 않다. 깊어가는 여름밤, 짜증 나는 더위를 잠시 물리칠 수 있는 'Klazz Brothers & Cuba Percussion'만의 신나는 박자와 리듬에 잠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즐거울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즐겁게 춤출 수 있는 'Klazz Brothers & Cuba Percussion'의 재즈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