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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7. 2016

부활 11집 - 사랑

사랑은 소식도 없이 머물다가 사라지는 여름밤의 훗훗한 바람이었다.

언제 찾아왔었는지 헤아리지도 못했는데, 사랑은 소식도 없이 잠시 곁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여름 바람 같습니다. 미리 마음에 살짝 기별이라도 주고, 그 아련함을 깃들였으면 분하지는 않을 텐데... 갑자기 심장에 훅 날아와 꽂혀 이리저리 시린 아픔만 남겨놓고, 이제야 사랑하는 법을 조금 터득하기 시작했는데, 이미 늦은 듯 후회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이 남기고 떠난 빈자리는 너무나 무겁고 엄숙한 것이어서, 그 무게의 깊이를 인간이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허전한 곳에 이미 짓눌려버린 심장은 차갑게 얼어버려서 떠나간 사랑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써봐도 미동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사랑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새겨보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어려 사랑을 몰랐습니다. 사람과 함께 있었지만, 사랑을 못 찾았고, 결국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 자신에게 사랑이 찾아왔다가 홀연 떠났음을 늦게나마 깨닫습니다. 부활의 <사랑>은 당연한 듯, 모든 걸 알고 있었다고 자만하고 있는 남자에게 후회의 연민을 남깁니다. 왜 사랑이 떠나고 나서야 사랑인지 알게 될까요? 왜 인간은 소중한 걸 잃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회한에 몸부림치게 되는 걸까요?





정동하의 목소리가 전하는 진심으로 후회하는 듯한 <사랑>의 가사를 듣고 있노라면, '이 남자가 정말 누군가를 가슴 깊이 사랑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순수합니다. 김태원이 탄생시킨 수많은 작품 중에서 <사랑>은 사랑의 시린 기억을 정확하게 짚어낸 서정성의 정점을 찍는 최고의 멜로디와 가사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2006년에 발매한 <사랑>은 부활의 11집, 수록 곡 중 하나입니다. 김태원은 이 노래를 작곡하면서, 이별한 연인, 돌아가신 부모님, 헤어진 가족, 그 밖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상했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가히 탁월합니다. 사랑에 대한 진중한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낸 것도 뛰어납니다만, 김태원 자신의 본연의 색을 드러내지 않은 서정적인 편곡을 더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남자는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감정을 피아노에게 의지하며, 나지막이 읊조리듯 속삭이기 시작합니다. 비올라의 점잖은 중음이 시작될 때쯤, 남자의 차분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벅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고조된 감정을 잔잔히 위로하기 위한 클래식한 반주는 하나의 덤입니다.





남자의 감정은 중후반을 넘어서 참았던 울분을 극적으로 토해냅니다. 나지막이 고백하던 남자의 독백은 절규로 치닫습니다.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이올린은 인간이 낼 수 없는 고음의 영역을 넘어서 끝장을 내버릴 듯, 남자의 절규와 끝을 같이 합니다. 마치 그것은 비극적인 영화의 결말을 연상시키는 OST의 그 힘과 같습니다. 마지막엔 그동안 참았던 드럼과 베이스도 자신의 육중한 힘을 과시하며 달려가지만, 한참을 토해냈던 남자의 목소리는 다시 스러집니다. 그렇게 남자의 절규는 막을 내립니다.








사랑이었던걸 모르고 만났었다면
헤어진 후 느끼게 된다고
시간이 흘러서 보고 싶어 질 즈음
아픔이란 게 찾아오고



사랑이었는지 그 사람을 처음부터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첫눈에 반하여 그 사람의 눈과 나의 눈이 한 곳을 바라보는 저릿한 감정을 처음부터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랑은 결국 감각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과 내가 한 공기로 사람의 호흡을 나누고, 말랑말랑하게 녹아든 심장을 서로 부둥껴안아 꾹 눌러, 닿을랑 말랑한 그런 거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보들보들한 맨살만의 촉촉한 교감일지도 모릅니다.



사랑인지도 모르고 어쨌든 만남을 시작을 합니다. 설렘이라는 감정을 가슴에 듬뿍 안은 채,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감정을 멋스러운 것으로 포장하여 과시하듯 드러내고 자신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이기적인 것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때론 감정을 공유하지 않으며 주어진 관계 속에서 서로의 존재만을 부각하려 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릅니다. 몇 주, 몇 달의 시간이 흐릅니다. 설레었던 감정은 점점 희석되어 속이 다 드러날 정도로 투명해집니다. 왠지 싫증이 날 것 같은 짜증이 밀려와,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속절없는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서로에게 날카로운 비수와 같은 말을 내뱉어 가슴에 큼지막한 상처를 내기도 합니다. 고통을 덜어주지 않으며, 서로에 대한 상처를 보듬어주지 않은 채, 그렇게 시간에 의지하다 싫증이라는 변명으로 헤어지기도 합니다.





알 수 없는 그 어느 날에
그리움이 다가오고 돌아가려 해보면
이미 멀어져 가는 슬픈 얘기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버렸을 때, 환한 오후의 햇살이 창가에 비스듬히 쏟아질 때, 낮고 잔잔하게 퍼지는 그림자 속에서 지나간 사랑을 더듬게 됩니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안정적인데, 내 마음은 점점 오래된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TV 오락 프로그램을 들여다봐도 눈물만 나오고, 좋아하는 팀이 이겨도 한숨만 나옵니다. 멍하니 베란다 앞에선 채, 도로 위를 쏜살같이 지나다니는 자동차 하나에 내 마음을 당장 실어, 그 사람에게 전하고 싶지만, 복받친 슬픔에 잠긴 멜로디만이 내 귓가를 맴돌 뿐입니다.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지쳐가던 시간에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그대



사랑을 떠나보낸 후,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했던 흔적을 돌이켜봅니다. 아직까지 마음속에 남아서 잃어버릴 듯한 괴로움 속에서도 든든히 버텨준 당신의 빈자리에 슬며시 손을 내밀고 앉아봅니다. 그 사람의 온기가 아직 따뜻하게 남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듯한 기억의 모자람을 채우고 있습니다. 내가 쓰러질 때마다, 용기를 잃을 때마다 옆에서 한결같이 웃어주던 그 사람의 미소를 떠올립니다. 사랑이 찾아왔을 때, 사랑인 줄 모르고, 그 사람에게 쏠렸던 나의 모든 감정들이 사랑이었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깨닫고 눈물을 흘리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힘들 때마다 외로움과 꺼져가는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어느 날에
외로움이 다가오고 돌아가려 해보면
이미 멀어져 가는 슬픈 얘기가 만들어지고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요? 불 꺼진 어두운 방에 홀로 누워있으니 시간에도 무디어 갑니다.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은 불이 있으나 없으나 매 한 가지입니다. 불이 켜져 있어도 환한 그 사람의 존재는 이미 내 마음속의 그 어떤 빛보다 강렬합니다. 불이 꺼져있으면 그 사람은 어둠조차 물리쳐버릴 환한 존재가 됩니다. 나는 눈감아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림 속에서 그 사람은 그 시절의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있는 방법은 현실에서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그렇게 슬픈 결말로 끝나버리게 되는 건가요? 혼자 있는 시간, 그 사람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지쳐가던 시간에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사랑해요 기억이 나요
언제나 간직할 수 있었기에
너무 늦었지만 너무 몰랐었지만

사랑이란 걸 알게 해 준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고마워요...



이제 고맙다고 그 사람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지울 수 없는 그 사람의 존재를 원래 자리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 살아서 쓰러지지 않도록 마지막 희망을 건네준 그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존재했었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그 사랑,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



언젠가 그 사랑, 잊을 수 있을까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분명히 살아 숨쉬었던 사랑의 의지를 숨길 수 있을까요? 가슴에 영원히 묻어야 할 겁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내 가슴속 깊은 곳 어딘가, 고이 간직하고, 사랑을 알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 감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사랑을 알게 해 준, 사랑의 각별한 힘을 깨닫게 해 준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이었던걸 모르고 만났었다면
헤어진 후 느끼게 된다고
시간이 흘러서 보고 싶어 질 즈음
아픔이란 게 찾아오고

알 수 없는 그 어느 날에
그리움이 다가오고 돌아가려 해보면
이미 멀어져 가는 슬픈 얘기가 만들어지고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지쳐가던 시간에 그대를 생각하면서
낸가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그대

알 수 없는 그 어느 날에
외로움이 다가오고 돌아가려 해보면
이미 멀어져 가는 슬픈 얘기가 만들어지고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지쳐가던 시간에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사랑해요 기억이 나요
언제나 간직할 수 있었기에
너무 늦었지만 너무 몰랐었지만

사랑이란 걸 알게 해 준
고마워요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살아와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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