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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05. 2016

게리무어 - Parisienne Walkways

기타의 처절한 선율이 귀에 닿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vkUpfw4Hf3w



기타가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흘러가는 찰나의 유행에 민감한 반응을 하며, 시대의 물결에 몸을 살짝 걸치기 위하여 낙원상가로 기행을 떠났다. 오랜 기행 끝에, 떨리던 손에 거머쥔 나의 첫 기타를 기억한다. 처음 가슴에 안고 손가락을 올려본, 기타 줄의 팽팽했던 긴장감을 더듬는다. 



손가락 끝이 얼마나 벗겨지고 터져야 멋진 연주를 할 수 있을까?라며 설레었던 그 시절을 추억한다. 부족한 연습 탓이었을까? 실력은 공들인 연습 시간에 비해 더디기만 했다. 일찍 포기하는 게으른 습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내가 거둘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판단을 일찌감치 내렸다. 차라리 멋진 연주자를 찾아서 귀에게 흐뭇한 호강이라도 시켜줘야 한다는 침착한 결론을 내렸다.


게리 무어를 우연히 만난 날, 고즈넉한 그날 밤을 기억한다. 반항기가 다분했던 20대 시절, 현실을 잊기 위하여 미치도록 외국 음악 수집에 빠져들곤 했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디지털 음원을 손쉽게 구할 수 없었기에, 테이프 한 개, LP 판 한 장이 너무나 소중했다. 수집한다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헤아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우리를 떠난 먼 과거의 시간이다. 먼, 바다 건너편의 음악과 직접 소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당시는 FM이 유일한 채널이었다고 할까? 아마도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였던 것 같다. 야심한 밤 10시 너머, 고정적으로 주파수를 맞춰 놓았던 라디오에서 사람이 흐느끼는 듯한, 기타의 처절한 선율이 귀에 닿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현실의 세계에서 접할 수 없는 천상의 세상에서나 들을 수 있을법한 예사롭지 아니한 연주였다. 순간 깊은 전율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이 후, 후두부를 강타할듯한 충격을 주는 음악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그때 나의 귀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음악이 바로 <Parisienne Walkways>였다. 나의 몸의 모든 세포는 순간 활동을 멈추었고, 작은 라디오 속의 선율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나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귀를 쫑긋하게 열어젖혔다.  


솔로 기타의 흐느끼는 듯한 독주와 함께 연주가 시작된다. 베이스와 드럼은 차분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숨기며, 기타가 이끄는 대로 뒤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거칠게 시작되었던 기타 연주가 멎자, 그리고 베이시스트의 짧은 독백이 이어진다. 읊조리는듯한 그의 음성은 파리의 옛 추억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는 파리의 특정한 시간대로 이미 여행을 떠나 그 영원한 시점에 머문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차분의 그의 속삭임 속에서, 과거의 사랑을 다시 만난다. 샹젤리제 거리, 보졸레 와인, 그리고 과거의 시간에 존재했던 그녀. 짧았던 파리의 풍경을 생각하며, 잃어버린 사랑을 생각하며 처절한 기억의 몸부림을 안긴다. 




계속되는 처절한 고음에 내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다.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그의 기타가 멈추자 다시 과거의 독백이 이어진다. 여름날 카페에서 속삭였던 사랑의 이야기들이 다시금 그의 머리를 괴롭힌다. 짧은 독백이 지나자, 과거가 전하는 괴로움에 멎어버린 심장이 마지막 발작과 같은 격정적인 연주를 한다. 기타는 홀로 무려 30초 가까이 숨이 멎을 듯, 한 음 만을 길게 토해낸다. 시간이 진행될수록, 감정이 고조될수록 고음의 몸부림은 끝이 없다. 폭발할 듯 하늘로 치닫던 고음의 발악은 중반부 이후, 다시 낮은 차분한 저음으로 분위기를 바꿨다가, 다시 고조되어 극적인 고음으로 치닫는다. 기타의 속주와 애드리브가 남발하고 차분한 목소리와 블루스가 뒤섞인 채, 시간에 의지하며 흘러가다, 문득 연주를 멈춘다. 


I remember Paris in 49
The Champs Elysee San Michelle
and old Beaujolais wine
And I recall that you were mine
in those Parisienne days 

Looking back at the photographs
Those summer days
spent outside corner cafes
Oh I could write you paragraphs
about my old Parisienne days


49년도의 파리를 잊지 않고 있어요
샹젤리제 거리와 샹미셀
그리고 해묵은 보졸레 와인이 떠올라요
그리고 그 오래전 파리에서는
당신이 내 사랑이었다는 것도 기억해요

사진을 보며
어느 모퉁이 야외 카페에서의
여름날을 회상하죠
파리에서 보내 그 시절에 대해
짦은 글이라도 쓸 수 있을 거예요

가사 출처 : http://happy-in.tistory.com/193





격정적인 연주가 끝나자, 더운 여름날의 강렬한 햇살의 기운만큼 땀이 온몸에 배었다. 연주자가 뻘뻘 흘리는 피와 땀의 찌꺼기가 내 얼굴로 뚝뚝 떨어진다. 쥐어짜는 듯한 그의 연주는 내 심장을 쥐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좋은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명언이 떠오른다. 나는 그의 연주에서 황홀한 추억을 안았다. 시간은 흘러 먼 곳을 향해 사라지고 있지만, 음악의 힘으로 시간은 다시 구원을 얻는다. 


내가 유달리 게리 무어에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한국에서 특히 인기를 얻었다. 그의 흐느끼는 듯한 선율이 전하는 동양적인 정서가 우리의 사상과 연관이 있었을까? 그의 고향 아일랜드는 오랫동안 영국에 지배를 받았다. 그 설움과 울분이 만들어낸 멜로디가 그를 공감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었을까? 내가 그토록 그의 연주에 몰입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향년 58세에 사망한 그를 기린다. 지금은 고장 나버린 턴테이블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그의 LP를 만지작거린다. 마음으로 그의 연주를 듣는다. 그의 소름 돋는 연주를 라이브로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현실이 아프다.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이제 여럿이 들을 수는 없다. 즐겨 하지 않는 보졸레 와인 한 병을 퇴근할 때, 들고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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