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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22. 2016

글쓰기는 결핍된 나를 채운다.

글자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고 그것과 냉혹한 승부를 겨뤄야 한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 – 유명 블로거, 브런치 작가 - 의 글엔 통 관심이 없는 나르시시스트였다. 한때는 “오직 내 글이 최고”라고 착각했다. 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을 시기하기도 했었고, 뛰어난 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운 나머지 그들의 글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후, 나의 내면은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였고, 긍정적인 버릇도 하나둘씩 생겼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정성스럽게 읽는 것이다. 나라는 틀을 벗어나서 다른 사람의 삶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짝을 내민 순간이었다. 또한 독자들이 열광하는 글과 작가에 관심을 두었고, 필요하다면 그들의 삶을 따라 하려고 생각을 바꾸기도 했다. 

지금은 감정의 밀도가 좀 더 안으로 꽉 찬 사람이 되었다. 부푼 가슴을 안고 주말마다 사람들이 가득 찬 대형 서점으로 달려가곤 한다. 옆 사람이 읽고 있는 책과 글에 슬며시 다가선다. 사람들의 사생활을 은밀히 관찰하고픈 욕망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어떤 글을 읽고 있는지. 어떤 책에 감정을 기울이는지. 흐르는 감정에 잠시 뛰어들고 싶은 이유다. 

잠재적인 독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뛰어들고 싶다. 정적으로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글이 아니라 숨 쉬듯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현장의 생생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들이 읽고 있는 책에 어떤 글자들이 뛰어다니고 있는지 감각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와 호흡하며 그들과 한마음이 되고 싶다.

글은 '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서 출발하여 이야기의 뼈대를 맞춰 나간다. 사건의 중심은 내가 된다. 지구의 시계가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든다. 시간의 호흡에 손과 발을 맞추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렇게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글 한 조각, 한 조각들을 머릿속에서 세상으로 옮기며 '나는 당신이 되고 당신은 뻗어나가 우리가 된다'. 가슴이 뿌듯하게 채워진 것 같아 흐뭇하다.


온라인에서 작성한 글은 인스턴트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반응을 바로 살펴볼 수 있다. 어떤 독자들이 몇 번 읽었는지, “좋아요”를 몇 번 클릭했는지, 댓글을 누가 남겼는지. 실시간으로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글 쓴 내용에 대한 애정적인 피드백을 확인한다. 미쳐 생각하지 못 했던 의견을 바로 전하는 경우도 있다. 완성된 글을 바로 수정할 수도 있다. 독자들과의 소통 속에서 글은 실시간으로 다듬어지고 더 업그레이드된다. 

온라인 세상에 기록된 글은 내가 썼지만, 주인은 사실 내가 아니다. 내 글에 공감을 주고 비평하는 독자들과 긴밀한 호흡을 나누기에 우리모두가 주인인 셈이다. 글은 살아서 진화한다. 작가의 글은 연못에 고인 물이 아니다. 글은 썩지 않는다. 살아서 어디론가 계속 흐른다. 독자의 생각은 작가의 방향타가 되고 퇴고한 글은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글은 분명히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을 중심으로 전개가 된다. 글이 생명을 얻으려면 작가의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서 독자의 생생한 의지와 결합해야 한다. 읽어줄 사람이 없는 글은 가치가 없는 글이거나 개인의 단순한 일기장과 같은 기록일 뿐이다. 작가는 독자의 성향을 연구해야 한다. 어떤 글을 원하고 있는지, 무엇을 궁금해하고 있는지 지적인 욕구를 채워줄 책임이 있다.

작가는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냉정한 비평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을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그리고 겸손하게 자세를 낮춰야 한다. 모자라는 부분은 채워야 한다고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모자라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상을 받았다. 외부에서 인정을 받고서 자기만족에 빠져서는 안 된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 작가의 학구열은 나이에 상관없이 이어져야 한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또 깨우친다. 

수상은 나에게 있어서 작은 관문이다. 변곡점을 겨우 지나왔는데 다시 방황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신중해야 한다. 조급하게 글을 쏟아붓던 과거는 의미가 없다. 폭발적인 글의 생산보다는, 숫자는 적더라도 생산한 글에 깊이 집중해야 한다. 한 문장, 나아가서 한 글자에 주목해야 한다. 문장이 막힘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지.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있어서 맥락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치며 다듬어야 한다.

작가에게 퇴고의 과정은 괴롭다. 내가 썼던 글들의 가지를 쳐내야 하는 고통을 낳기도 한다. 한 가지 주제의 글을 쓰기 시작해서 1차적으로 탈고하는 시간보다, 퇴고하는 시간이 몇 곱절 더 들어갈 수도 있다. 그래도 고쳐야 한다. 글자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고 그것과 냉혹한 승부를 겨뤄야 한다. 내 글을 읽어줄 독자들을 위한 작가로서의 마땅한 자세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또 고친다.
글은 결핍된 나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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