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개발과 글쓰기는 과정의 반복을 통하여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나 스스로에게 이분법적인 대답을 늘 요구한다. 설명을 했지만, 말문이 닫히고 만다. 나는 기술을 연마하는 프로그래머다. 프로그래머는 기술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내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의 핵심은 사용자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검증된 기술을 사용하고 적절한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도입하여 정해진 시간 안에 버그(에러) 없이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것이다.
기술 개발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얻어지는 경험이 더 소중하다. 기술 개발은 수많은 실패의 반복 속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에 근접하도록 오차를 줄여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를 구현하기 위하여 투입되는 시간과 미세한 오차를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은 고객 눈에 비치지 않는다. 오직 결과물만이 사용자에게 보일 뿐이다.
글쓰기의 과정도 비슷하다. 과정은 당연한 가치로 여겨질 뿐이다. 노력은 독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뼈를 깎는 창작자의 고통을 독자가 알 수 없다. 오직 눈에 보이는 결과물만을 냉정하게 판단할 뿐이다. 프로그래머와 작가는 비슷한 운명을 타고났다. 내가 그래서 글쓰기에 끌린 것일까?
어느 쪽이나 창작은 고통을 불러온다. 고통스러운 것은 실패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몇 달동안 개발한 프로그램이 사용자에게 외면당하는 것이나, 몇 달동안 준비하여 출간한 책이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것이나 '작업에 투입되는 긴 시간'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좌절이 다가온다.
긍정적인 사람의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실패가 쌓이면 좌절감이 치솟는 것이 아니라 다음번에는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증가한다. 마음속에 긍정적 에너지가 넘친다. 내가 이기고 당신이 져야 하는 제로섬 싸움이 아니다. 내가 동료를 물리쳐야 이익을 독차지하는 게임이 아니다. 나를 이겨내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과정이다. 물론 그 고지를 밟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기술 개발과 글쓰기는 과정의 반복을 통하여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기술의 결과를 이용하는 사람, 글을 읽는 사람, 양쪽 모두는 행복하다. 시장의 세속적인 이익은 공유될 수 없지만 기술과 글쓰기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이익이 공유된다. 그것에 있어서 실패는 끝이 아니다. 실패한 경험은 형태는 다를지라도 한 단계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자산이 된다. 이 길은 험난하다. 이 길로 뛰어들었을 때, 일찌감치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을 설명하는 것조차도 때론 힘들다.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할 때마다, 내 한마디는 초라한 변명이 된다. 성장하고 있다고 증명하고 싶지만 세상은 오직 결과로 나를 판단한다. 나는 구차한 사람이 된다. 나를 설명하려면 두 가지를 빼놓을 수 없다. 과정을 빼먹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나는 알맹이가 사라진 껍질 신세가 된다.
기술 개발은 결과 자체가 아니라 결과를 얻기 위한 기나긴 과정의 싸움이다. 치열하고 집요해야 하며, 허술한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스스로 나태해지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밀리 세컨드 단위로 시간을 쪼개고, 소수점 10자릿 단위까지 계산에 집착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다량의 데이터를 다루기 위하여 목숨을 건다.
글쓰기는 때로 초 단위까지 작업 시간을 쪼개고, 문단과 문장 그리고 글자의 단위까지 집착하고, 머릿속에 날아다니는 갖가지 생각을 붙잡기 위하여 목숨을 건다. 이것도 게으름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강요하지 않아도 집중을 하게 되면 폐쇄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간다. 아침은 오후가 되고, 오후는 다시 밤이 되는 것에 무뎌간다. 늘 피로와 함께 살아가지만, 원하는 수치에 근접했을 때의 희열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나는 기술 분야에서 원하는 목표에 근접했지만, 아직까지 글쓰기 세계에서는 한없이 멀기만 하다.
두 가지 세계의 중심에는 내가 서 있다. 보란 듯이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나란 존재가 첫 번째다. 기술이 저절로 축적되지 않았듯이 글쓰기도 그러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과정에 정신을 쏟을 것이다. 기술 개발에서 정점을 맛보았듯이 글쓰기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정점을 맛보고야 말겠지. 그렇게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