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다 : 모두에게 만족을 준다.

내가 꿈꾸었던 이상은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행복해지는 것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는 없다.


누군가를 이끌어가야 할 자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인가" 그것이 내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내가 오른 자리가 단순히 경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겉으로 잘난 척 보여주려 애쓰는 건 밑천이 곧 바닥나기 마련이다. 바다와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어떤 상황이든지 바로 응답할 수 있다. 문제의 해결 능력은 쌓여있는 지식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늘 배움에 굶주린 사람, 그것을 채움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모습으로 남들에게 존경받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때로 사람들을 몰아세웠다. 어떤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에 따라주길 바랐다.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실망감도 적지 않았는데, 제대로 따라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열을 세웠다. 뒤로 떨어진 사람은 조금 분발했으면 했는데, 내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보통의 나는 관대한 편인데, 게으른 사람에겐 절대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사람을 절대 공평하게 대하지 않았다. 때로는 듣기 거북한 소리를 던지기도 했는데, 그 소리는 아마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다. 내가 계획한 것과 흐름이 달라지는 바람에 윗사람에게 역으로 곤욕을 치르는 날도 있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오해를 사는 일이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내가 가볍게 던진 말도 그 사람에겐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었는데, 나는 상대방의 입장이 될 수 없으니 그것을 100%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더 가혹하게 몰아붙이기도 했는데, 그 사람이 무조건 버티어 내기를 바랐던 건 나의 섣부른 기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만을 줄 수 없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때로는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할 순간도 닥친다. 그래야 나머지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영화 U-571에서는 다수를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친다. 침몰 위기에 처한 잠수함을 구하려면 한 사람의 희생이 꼭 필요했는데, 함장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어떤 승무원을 지목한다. 결국 승무원은 함장의 기대대로 잠수함을 구하고 목숨을 버린다. 리더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때로는 누군가의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전부를 살려야 하는 선택의 상황이 따른다는 것이다.

전부를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나 역시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영화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과 사사건건 부정적인 사람 사이에서 나는 때로 후자를 이해시키기도 하고 안고 가려도 했다. 하지만 멀쩡한 사람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에너지가 전염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조직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 결정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불만을 초래하는 일일지라 하더라도, 설령 내가 고립되어 섬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결단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꿈꾸었던 이상은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현될 수 없는 불가능한 가치이기도 했다. 조직은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그룹으로 나눠지곤 했는데,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그룹은 긍정적인 그룹의 행복을 갉아먹었다. 나는 그래서 악역을 가끔 자처한다. 건강한 조직을 위해 병든 부분을 도려낸다. 그 과정에서 원망도 산다. 조직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 나는 그 과정에서 깨닫는다. 내가 모두에게 환영받거나 만족을 줄 수 있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만약 조직 속에서 암덩어리와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 역시 버려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조직의 생리다.


http://www.yes24.com/24/GOODS/41833177


페이스 북 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futurewave.Le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