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흔적
겨울이 되고
내 마음은 얼어붙기 시작합니다
계절의 문이 열리고
내 시절은 투정만 부리다
인기척에 잠이 깹니다
아침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으나
나는 고단한 오전과 커피를
섞다 볶습니다
낮은 한숨이 창가에 기대서고
눈을 감아도 하늘은 맑은데
거울에 비친 나는 불투명합니다
분명 지치고 피로했으나
무언가를 수집하며 들떠 있기도 합니다
창가의 시간에 서서
나는 당신의 안부가 떠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십니다
그리고 어두워진 책상에 앉아
냉소 섞인 말들과 거친 싸움을 합니다
백지 한 장을 펼쳐놓고
혼돈, 욕망, 저항, 자유와 같은 글자를 늘어놓지만
글자 하나의 무게는 여전합니다
끊을 수 없는 사슬은 더 팽팽합니다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나는 때를 찾고 있을 뿐이야,라고 써봅니다
지나간 가을의 신음이 들려와
정수리를 차갑게 식힙니다
나는 붕괴되는 냄새
생명이 태어나는 냄새를 동시에 맡고
시간을 정지시킵니다
가을과 겨울이 마주하고 있는 어느 경계에 나는 서 있습니다. 속도를 줄일 수 없어 나는 걷고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의문을 품는데, 가을은 질문에 답을 내릴 적당한 시기였습니다. 나는 일상에서 잠시 물러서 계절의 과거를 봅니다.
가을은 더위에 싫증이 날 때쯤 찾아왔고, 슬며시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줬습니다. 가끔 이유없이 슬픔에 빠지는데, 지난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왜 그맘때쯤이면 먹먹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걸까요. 계절의 시작과 끝 사이에 잔상처럼 남아있는 쓸쓸함 때문일까요. 인간은 나약한 인간이라서 얽히고 설켜있던 감정을 정리하다 보니 그럴까요. 새싹을 피운 자리 하나가 완전하게 꽃을 피우지 못한 탓일까요.
가을이 보다 매력적임은 극(여름)과 극(겨울) 사이, 중간쯤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은 인간과 닮았습니다. 우리는 가끔 한쪽으로 치우친 삶을 살도록 강요당하는데, 이를테면 '너는 누구 편이야?', '좋은지 싫은지 분명히 말해'와 같은…… 그런 고리타분한 질문 말이죠. 그런 헐어빠진 질문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에도, 가을은 불분명한 인간의 정체성마저 포근히 안아줍니다. 대답을 하지 않아도 문제없는,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아도 되죠. 뜨거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 그 무엇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의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가을입니다.
마음속에서 불쑥 치밀어 오르는 묵은 것을 잠시 들여다보고 느끼는 것도 가을의 정취라고 할까요? 나는 그 매력과 한철 깊은 사랑에 빠졌다 어제 헤어졌습니다.
살아있음은 신비롭고 황홀한 경험입니다. 나의 인생은 가을을 지나 겨울을 향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찾아올까요. 내게 머물렀던 가을이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을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뜨렸다 줄어뜨렸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무게에 따라서 때로는 팽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 보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조금 떨어져 마음속에서 산책이라도 나가보렵니다. 가까이 가려 할수록 멀리 달아나버리기만 했던, 무엇을 준비해도 완벽하지 않았노라 움츠러들었던 그 마음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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