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제 보내야 할까

통증은 꿈에서도...

당신을 이제 보내야 할까



당신과 같이 살아온 날들에
후회만 남아있다고

유리창에 대못을 박고 사는 나는
가슴에 새겨진 당신의 가을 흔적마저
쓸어내는 육성을 들었습니다

축축이 젖은 창가에
그리움을 문질러도 하늘은 바싹 타들어갑니다
타다만 재 한 줌이 궤도를 돌아
혜성의 꼬리에서 통곡을 치며 좇아가더라도
생은 완성되지 못하여 고통을 꽃피웠습니다

당신과 같이 살아온 날들이
갚을 수 없는 전생의 빚이었다고
그것을 다 태우고도 수북이 산을 쌓고 있는 나는
골짜기를 이루어도 물 한 방울 흐르지 못하는 돌무덤입니다
나는 당신의 여름 골짜기에서
여전한 까마귀 울음을 들었습니다

갈기갈기 끊어진 누군가의 허리
그 조각들이 펴지지 않아도
나는 정해진 시간의 회전 속에서
승부를 펼쳤지만 패자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과 같이 살아온 날들이
아물지 않은 상처뿐이라고
패배한 것들에게 위안이라도 남기기 위해 사는 나는
당신이 아끼던 카메라가 찍던 젊은 바다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물결 위에서
배 앓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소리 없는 방에 갇혀
거짓말이라고 쓰인 소리를 내뱉거나
어떤 고통이든 감당하겠다고 으름장을 늘어보아도
등이 휜 물고기는 항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어부가 되어
바다에 던져진 그물을 건져 올렸고
허기진 하루를 뚝뚝 끊어 먹기 위해
달빛에 물든 이빨을 갈았습니다

햇살 아래에서 달아나봤자
숨을 곳이라곤 당신의 얼굴뿐

세포가 불타고 어둠이 날아가는
지하세계에서 나는 몸을 사렸고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어루만지다
머리를 바닥에 찍어댔습니다

노란 보석 작가님 작품




이별이라는 것은 한 사람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비워내는 일입니다. 속을 다 비우면 진공 같은 상태가 찾아오는데, 밥을 먹지 않아도 공허함이 주는 포만감 탓에 허기조차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에서 사람을 들춰낸다는 것이 나와 같은 예민한 사람에겐 위장병이 되어 가슴을 압박합니다. 몇 번의 계절을 같이 보냈던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 누구도 나에게 속하지 않았던 원시의 상태를 상상합니다. 시간은 과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처는 살아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를 밟고 나에게 옵니다. 과거의 나는 백지입니다. 무엇이든 써 내려갈 수 있는 의지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채울 용기는 없어요. 무엇을 시작하든 또 비움, 이별을 먼저 건져올리거든요.

손가락을 입속에 넣고 헛구역질하는 걸 상상해보죠. 이미 소화시킨 나쁜 음식을 없앤다는 행위가 위장에 위해를 가하듯이, 사랑하던 사람을 소화기관 위쪽으로 역류시킨다는 게 단순히 중력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만은 아닐 거예요. 내 몸의 일부였던 부분을 떼어내는데 고통이 없을 수가 있나요.

고통은 꿈속에서도 찾아옵니다. 내 몸도 내 뜻대로 조종이 되지 않는데, 마음은 보이지도 않으니 더 그럴 테죠. 떠나간 사람이 종종 미운 얼굴로 나타나주면 좋겠는데, 그렇지는 않더군요. 꿈속에서 밝은 미소로 찾아올 때면 깨어났을지라도 통증이 하루 종일 유지됩니다. 내 마음에서 '..., 그 사람이 부재 상태였구나.'라는 걸 현실에서 다시 보는 거죠. 억지로 비우려고는 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해요.

오늘 밤, 꿈속에서라도 또 만날 수 있다면 바로 말할 수 있게
노트에 몇 가지 글자라도 적어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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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와 본문의 사진은 노란 보석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사진의 전제 및 복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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