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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03. 2018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채사장

책 리뷰

지식을 구체적으로 얻고자 할 때 흔히 책을 찾는다. 책 읽는 것뿐만 아니라 서점으로 가는 것 자체가 지식을 얻기 위한 정보 습득 활동이다. 부족한 부분을 콕 집어서 넣어주는 그런 책을 선호하는데, 사실 그런 책은 어디에도 없다. 지식은 어떻게 내 머릿속으로 저장이 되어서 망각이 되지 않고 활용이 되는 걸까. 어떤 지식은 듣고 읽어도 금세 사라지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인간의 뇌는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 걸까. 많은 것을 기억하기보다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빨리 찾는지, 그런 검색 능력이 더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다.


“별 모양의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별 모양의 지식이 담긴 책을 읽으면 될까요? 한 번에 읽으면 안 될 것 같으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별이라는 지식을 얻을 수 없어요. 지식은 그런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책을 펴야 해요. 삼각형이 그려진 책, 사각형이 그려진 책, 원이 그려진 책. 이런 책들을 다양하게 읽었을 때,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비로소 별을 만드는 것입니다.”


웬만해선 책 리뷰를 안 쓰고 있다. 써야 할 원고가 많아서 읽고 나서 정리하는 게 부담이었다. 문제는 읽고 나서 리뷰를 안 쓰니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진다는 게 큰 문제였다. 클라우드 노트에 보기 좋게 정리는 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금방 찾아서 활용은 하고 있다. 오래 기억했으면 하는데, 스마트폰에 빠져들수록 뇌의 능력이 퇴화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다양한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노력만 열심히 한다. 정기적으로 구매하고 읽고 난 후, 되파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리디북스에서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읽었다. 이 작가의 전작은 읽지 않았다. 지식이란 걸 또 머릿속에 주입해야 하나 싶어서 부러 읽지 않았다. 이번 책은 제목부터 끌렸다. 제목에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의문이 들었다. 작가와 독자, '나'를 중심으로 자신이 만든 세계, '나'와 '나'가 만나서 새롭게 생성하는 세계. 물론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손을 떼지 않았다. '나'라는 세계가 만들어낸 새로운 '자아'가 열리는 환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소설 <마션>의 저자인 앤디 위어가 쓴 The Egg’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는 사후에 신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지구에 존재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두’, 심지어 신까지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가 하나의 존재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내가 신이며 신이 곧 자신이라는 주장이었다. 앤디 위어의 단편 소설과 채사장이 이야기하려는 서사적 구조가 일치하는 것 같다. 


굳이 세계와 자아의 선후관계를 말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동근원적同根原的이다. 동근원적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데, 일반적으로 서양철학의 해석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라고 분리해서 말할 수 없고, 두 가지가 서로 원인이 되는 동시에 결과가 되는 관계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소모적인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동근원적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나와 타인, 모두가 연결되어있으니 헤어진다는 것 - 죽음 - 이 슬픈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작가. 과연 그럴까. 작가는 죽음을 이미 뛰어넘은 걸까. 불우한 시절을 넘긴 작가의 이야기를 엿보았다. 그는 지금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부를 거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묵직한 책을 쓴 걸까. 무거운 책이 독자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소수의 사람이 한 가지의 목표를 위해 산다고 말했다. 자신이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내밀며 꿈을 키우는 사람. 그것이 실패했을 때 아무런 대책도 없는 사람.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자신 있는 것이 단지 지금 하고 있는 그거뿐이라는 냉정한 현실. 현실은 그래서 아픈가 보다.


그래서 이들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한 가지 전략으로 대응하는 적처럼 우스워 보이는 것은 없다. 세상은 이들을 쉽게 쓰러뜨린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자신이 쓰러진 이유를 오해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재도전을 다짐하며 또다시 이렇게 말한다. 예전의 나는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바구니 하나에 모든 걸 담는 사람은 아니다. 리스크를 심하게 대비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일어나지 않을 상황까지 모두 시뮬레이션하는 사람. 가능한 상황을 모두 붙들고 싶은 사람이 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채사장의 조언을 잘 따르고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하지만, 그의 전작이 밀리언 셀러가 되었듯, 이 책 역시 다양한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한다. 그래서 다시 책을 읽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나와 같은 예비 저자들에게도 기회의 땅이 도래하길, 글을 쓰고 읽는, 독자와 작가의 세계가 충돌하는 시대가 열리길 기대해본다. <우리가 언젠가 만난다>에는 40여 가지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이 깊고 철학적이어서 한 번 읽고 끝낼 책은 아니다. 옆에 두고 자주 읽어야 한다.


나는 이제 우리가 자기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영원한 존재임을 안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바로 그것임을 안다.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거울에 비추어보듯 희미하게나마 관계의 끈을 맺고 있지만, 무한의 시간이 지난 먼 훗날의 어느 곳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반갑게 마주할 것이다.
헤어짐도, 망각도, 죽음도, 아쉬운 것은 없다. 우리는 운명처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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