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다큐, 이야기
"나는 몹시 불쾌하다."
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우민호)의 안위가 먼저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제작된 모든 사회 고발, 기득권층의 부조리를 다뤘던 영화 중 가장 사실적이며 솔직한 내러티브를 갖춘, 사회의 온갖 비리에 대한 고발성이 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타락한 권력 군상들의 타락한 맨몸과 그들과 얽힌 조직의 민 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시대가 감추고 싶은 더러운 자화상을 거짓 없이 솔직하게 반영하는 것이 바로 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의 몫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가감 없이 리얼하게 제작된 영화들은 권력이 보유한 힘의 논리에 굴복하고 때론 감춰져 일반인들에게 보일 기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서운 현실이기도 하다. 영화 <내부자>는 실제 권력을 쥐고 흔드는 더러운 세계를 무자비하게 파헤치고 그 내면을 집중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불쾌하다. 더럽다. 찝찝하다." 정도 일 것 같다.
나는 그 누구보다 부조리하고 더러운 최 고위층 상류사회의 문화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내 생각 이상으로 더 지저분하고 치졸한 숨겨진 제왕 같은 권력의 더러운 맨몸뚱이를 숨김없이 그리고 여과 없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현실을 밑바탕의 장치로 깔고 있기에 우린 무섭고,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 만약 이 영화의 결말이 환희를 느낄만한 시원한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나의 일상에 미치게 될 어두운 영향에 소름을 끼치게 되었다. 어쨌든 권력층의 부조리함을 더 샅샅이 까발려주게 됨에 따라 그들의 실상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영화는 사회의 부조리를 몸서리치게 고발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법조인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일반인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장벽. 그리고 더러운 그들을 달래 주는 불쌍한 여성들. 난 아직도 장면 장면들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더럽고 불쾌하다. 선정적이긴 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권력의 욕망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장면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우민호 감독은 청불 등급이 되더라도 실제 웹툰에 연재되었던 성 접대 장면을 그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는 '내부자들이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저렇게 당당하게 추악한 욕망을 내뿜는다는 게 놀라웠다'라고 인터뷰한다. 그래서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접대 장면을 우리에게 전달한 것이다.
"우린 알아야 한다."
우린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영화의 장면들이 충격적이고 극히 자극적이지만, 그 하찮고 더러운 장면들은 우리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며 몸서리치며 한숨 쉬는 것 이상으로 더 사실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그 장면은 권력들의 밑바닥 세계를 아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그 세계는 과장되지도 않고 영화보다 더 부도덕하며, 부조리한 검은 커넥션을 감싸는 세력들은 영화 이상으로 몸집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국민들은 분명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아야 심판할 수 있고, 우리의 권리를 정확하게 행사할 수 있다. '설마 그렇겠어?'라고 착각만 하고 있다간 우리도 <안상구>처럼 앉아서 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권력의 개가 아니며 국가의 개는 더더욱 아니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현실은 논픽션이다.
"천의 얼굴 이병헌 그리고 안상구"
그의 사생활은 안타깝지만, 연기력은 실로 위대하다. <달콤한 인생>, <광해>, <악마를 보았다>등의 필모그래피에서 느껴지듯이, 내면적인 감정의 흐름에 충실하면서도 선이 굵은 스케일 있는 연기력에도 탁월하다. 나는 그의 배역에 고스란히 감정이입을 하며, 함께 복수를 꿈꿨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 한 것이 남아있는가?'
영화 중 안상구 역을 맡은 이병헌의 대사다. 권력에 있어서 충성스러운 개와 같은 역할로서, 이빨 사이에 끼인 음식 찌 거기를 끄집어내는 치실 만도 못한 권력의 개가, 정의를 외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정치, 기업, 언론, 법조 등의 국가 핵심 세력들이 정의를 외면하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정치깡패인 안상구가 정의를 위하여 각성하는 것일까?
아니면 주인을 물어버리려고 작정한 복수에 찬 한낮 '개'일뿐일까?
누가 정의고 누가 악마인지 시종일관 넋을 놓을 수밖에 없다. 안상구가 위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내 가슴은 철렁한 위기를 함께 맞는다. '또 이용당하고 팽당하는구나. 복수를 하려면 이왕이면 제대로 그리고 완벽하게 준비해서 할 것이지 왜 저렇게 허술하게 진행하다가 또 당하는가?' 하고 안쓰러운 연민만 더 해갔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들 입니다."
“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민주주의에서 국민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
어리석은 국민들은 국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삶의 애환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으로 착각한다. 이런 믿음은 더욱 그들의 이용 대상으로 우리 자신을 전락시킬 뿐이다. 그들은 결코 우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의 안위에만 관심 있을 뿐. 그들이 생각하는 일반 대중은 개, 돼지일 뿐이다.
파란 약, 빨간 약 중에서 이제 깨어날 수 있는 알약을 선택해야 한다.
"권력이란?"
권력이란 무엇일까? 링컨은 '그 사람의 성품을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라고 했다.
권력을 쥐게 되면 필연적으로 인간은 망가지는 것일까?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조차도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
그쪽 세계의 현실인 것일까?
뇌신경 학자인 이안 로버트슨은 '권력을 쥐면 사람의 뇌가 바뀐다.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되는데, 이로 인해 공감 능력이 약화되고, 목표 달성이나 자기만족에만 집중하게 된다.'라고 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에게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로 알고 있다. 흔히 남성들은 여성에 비하여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권력에 욕망을 드러내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들이 여자들을 노리개와 같은 도구로 사용하는 장면에 아내와 나는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과거에 자살했던 유명 연예인의 모습이 떠올라 도저히 볼 수 없는 장면이기도 했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추악한 권력가들의 욕망의 끝에는 탈출구가 없었다. 상대방을 밟지 않으면 자기가 밟히는 무서운 현실, 그렇게 때문에 영화에 끝까지 몰입한다는 것은 고통이자 스트레스였다. 난 그 난잡함과 추잡함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 잔"
이제 영화의 역할을 모두 끝났다.
또 다른 선택은 관객과 국민에게 주어진다. 추악한 환경을 포기하고 떠나 몰디브와 같은 곳에서 모히토나 한 잔 하며 여생을 병신처럼 틀어박혀 살 것인지 아니면 각성하여 깨어있는 시민이 될 것인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진다.
영화의 결말이 현실과 똑같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영화처럼 내부자가 맹활약을 현실에서도 해줄 수 있을지 우리는 가늠할 수 없다. 이미 그런 시도가 있었으나 그저 무기력한 결말로 용두사미가 되었을 수도 있다. 철옹성 같은 지배층의 담벼락을 뚫을 수 있는 힘은 어떤 것일까? 두 눈 부릅뜨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힘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 이후에 우리도 모히토에서 몰디브 한 잔 정도 할 수 있는 유머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세상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