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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15. 2018

해 질 녘

영원한 반복

  영원히 해가 지지 않는 세상을 소원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자리를 빼앗긴다는 게 얼마나 큰 상실인 줄 알기에 어둠이 깔리면 더욱 공포에 치를 떨었다. 다시는 아침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 채.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런 세상은 글쟁이들에게나 속하는 이상임을 알았지만.

  때가 되면 차례를 누군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런 낭만적이지 않은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에 종종 휩싸인다. 여름이 한창이면 그런 원인모를 불길한 생각에서 잠시 떨어진다. 무엇이든 깊어지면 그 짙음에 잔뜩 녹아들어, 자신이 어떤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더위는 분명 세포들의 간격을 잔뜩 벌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포는 활성화되려 하지만 과다한 에너지를 받은 탓에 엉뚱한 곳으로 폭증하고 결국 같이 어울리지도 못한다. 긴장하지만, 반응조차 할 수 없는 망각의 상태, 잠시 활동을 늦추어버린 상태로 몰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에게는 몰락이 없다. 'noblesse oblige'와 같은 품격을 갖는다. 무언가를 넘어갈 때, 짧지 않은 인사를 하고 싶은 듯 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금빛의 물결을 길게 토하고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축제라도 열 기세다. 자신의 생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영원할 것 같은 수평선의 이어짐처럼.




잠에 빠질 듯 
불꽃을 피우다 낙하하는 
너의 가녀린 속삭임 

검은 숲속 너머로 
아이가 잠든 해 질 녘
찬란했던 미소는 꿈일런가 

도시를 누비던 
빛의 공중제비가 끝을 보일 때
무릎 꿇은 자의 비굴함, 신의 마지막 자비 
콘크리트의 사나움까지 식었지 

당신이 잠들 무렵
신의 마지막 축복까지 
부자가 떠난 빈도시의 적막함 앞에서 

밤은 얼마나 넓은 향기를 내뿜는가 
사라진 본능에서 피어나는 고독의 울부짖음 
무채색의 가슴, 멈추어버린 바람의 나부낌 
어느새 살아나 날아가는 금빛 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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