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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14. 2018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그에 대한 어떤이의 독백

  말이란 원래 아름다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는 악독한 말들도 많지만 몇 안 되는 따뜻한 말들로 인하여 나쁜 말들은 충분히 좋은 것들로 덮을 수 있다. 몇 가지의 단어를 구사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감정과 잠시 동화되면 그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아직 억눌려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머물다 떠나려는 감수성에 기대어 볼 수 있으니.

  주말 아침부터 꽤 더운 기운이 분주함을 알렸다. 여름의 마감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탄이 창밖에서 거세게 저항하는 듯 보였다. 멀리서 선풍기 펜이 부스러지는 소리를 내었고, 시간은 소리도 내지 않고 서서히 여름을 앓았고, 눈을 떠 보아도 창밖에서는 까마귀만이 높이 솟구쳤다. 이상하리만큼 나지막하고 외롭기만 한 여름의 끝자락을 알리는 날, 매미가 흙을 뚫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지만 결국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절규의 날.

  치밀어 오르는 땀을 닦고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올렸다. 생각 없는 눈동자를 추켜세우고 정신을 환기시키려는 낮은 움직임과 함께. 세상의 소란스러움이 빠져나간 소리마저 잠든 고요한 시간이었다. 그래, 당신에게 편지나 한 편 써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지난밤에 난데없이 찾아온 한 가지 희소식 때문이었을까. 몇 시간, 아니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억은 너무나 선명해서 내 마음은 무채색일 수 없다. 그런 것은 당신에게 편지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알릴 수 아직 전할 수 없으니. 기쁨이라는 감정도 잠시뿐이다. 나는 그것에 냉소를 보내고 녹슬어버린 감각을 환기시켜야 한다. 세상은 어차피, 밝은 순백색과 검은 음영이 물든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유난히 맑은 하늘, 그래서 울고 싶은 날
여름의 마지막 장을 겨우 넘기고
나는 당신에게 소식이란 걸 남겨봅니다

들을 수도 가닿을 수도 없는
열병을 앓았던 젖은 편지 말입니다

바람에 실려온 
당신의 간헐적인 웃음, 희미한 뒷걸음 
상처가 피부에 스칩니다

오늘도 꽤 고향에서 멀어졌어요
기쁨도 슬픔도 사라진 어느 날
차라리 외딴섬이 되고 싶은
부재에서 자유롭고 싶은 그런 날이죠

환희의 잔치는 열리지 않아요
창밖에 고요한 인사를 보냅니다

깔끔하게 다려진 정장 한 벌
벽에 붙어 있는 작은 침대
네모난 책상과 전보(電報) 한 조각
시간은 아득하게 가라앉네요

이제 나는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물이 되어가나 봅니다

당신의 부재에도
남은 꽃잎의 숫자를 담담히 세어볼 수 있는
떨어져 나가는 개별자의 슬픔을 가늠할 수 있는
홀로 일어설 수 있는 
나로 말입니다




  기쁜 소식이란 것도 결국 나처럼 혼자 방치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축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러하다면 나는 세상에서 홀로 떨어진 존재일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많은 기다림이 필요할까. 남겨진 나의 생애에서 그런 것들을 완전히 이루어 볼 수 있을까. 혼자가 아닌, 함께 꿈을 꾸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쓰인 편지는 아마도 붙일 수 없겠지. 그것은 어딘가에서 창백한 종이 한 장으로 남겨졌다가 다시 불태워지겠지. 나는 편지에 남긴 나의 상처를, 환희의 증거를 본다. 존재가 전하는 어떤 무언의 메시지, 세상에 대한 격앙이 가득 찬 메시지, 무수한 심장의 떨림들, 미래에 대한 들뜬 희망, 부조리에 대한 저항, 내 육체에서 씻기지 못하는 체념을 본다. 

  나는 걸어갈 것이다. 세상을 향해서, 때로 속으로 울부짖음을 삼키면서, 간헐적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당신과 나의 순간들을 기념하며. 눈을 감는다. 당신은 시간을 차원을 넘어 나에게 온다. 우리는 무엇이든 극복하고 구원된다. 공허한 삶의 무력감으로부터, 우리를 괴롭히는 절망으로부터.





오늘은 위의 촉촉한 글을 읽고 여학생의 입장에서 픽션을 써봤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시 한 편도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벌써 3년 전의 글이더군요. 이 글은 어떤 커뮤니티에서 봤습니다. 댓글처럼 몇 가지의 단어와 문장만으로도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글 쓰는 일이 감사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입니다. 무엇인가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가 깨어나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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