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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08. 2018

슬픔을 위해 쓰는 시

우주의 먼지로 사는 나는
하얀 그림자의 착지를 기다린다 
자작나무의 비통한 형상이 깃든
갈증의 숲 속에 자리를 잡는다

마음이 가난한 자, 도시의 적막함
말라가는 나뭇가지, 뿌리 속에 허물어진 그늘
귀를 막아도 들리는 가슴의 파도
너를 노래하는 모든 시적인 음률

나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여
진한 커피 한 잔을 우려 놓고
물끄러미 연기(煙氣)만을 들이마신다

인생은 가끔 쓸쓸하게 진다
낮달은 창백하게 돌아오고
너를 잊기 위해 꺼내 든 시집은
되돌아오는 부재의 연기(演技)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환영을 잡으려는 사냥꾼
잡히지도 않는, 사랑 노름을 하는

끝내 커피는 마시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한다 

따분하게 식은 가슴으로
나는 몇 분 후의 미래를 끓이거나
잃어버릴 것들을 태우다
시든 글자 몇 개를 나뭇잎에 그린다





  시를 쓰는 이유가 불안한 마음과 평화로운 마음이 공존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교착된 상태를 증명하는 것이다. 시에는 어떤 사물 또는 대상에 대한 연민, 불안의 감정이 담겨 있다. 감정은 현재와 과거 때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 담는다. 

  시를 쓰는 행위로 인하여 시인은 감정의 해소- 카타르시스 - 를 경험한다. 대상과 시인의 감정은 서로 운율을 맞춘다. 영화 <시인의 사랑>에서 주인공은 시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라고,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울어주는 게 시인이라고, 하지만 시인은 슬프지 않다고, 시인에게는 슬픔이 시를 쓰는 재료가 된다고"

  시를 쓰면서 화자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동일한 감정을 갖는다. 그것이 고통스럽고 괴로울지라도 담담하게 맞선다. 다만 비통한 것은 들을 수 없는 나의 언어적 한계성이다. 한계를 떠올리면 불안하지만 마음이 안착되지 않기를 바란다. 안정은 시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다. 슬픔은 마음 바깥과 내부에 공존한다. 대상과 소통하기 위한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시인이 살 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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