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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25. 2018

당신의 흠

초단편 가상 소설

 저주가 희석된 악담(惡談)이 공기를 타고 부활한다. 구체적인 목표물도 없고 머물러야 할 서식처도 알지 못한 채 공중을 떠도는 말. 단지 그것은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되어 가끔 나에게 흘러들어오기도 하고, 떠나지도 않고 제 집인 양 주인 행세를 떨치기도 하고. 



나그네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나에게 안착해버린 걸까. 

그래서 내가 지금 이토록 괴로운 걸까.



 당신이 주도하는 시간, 오늘도 당신은 비판을 위한 희생물을 찾는다. 대상의 허물을 집요하게 찾아내어 그것을 자신의 만족으로, 대상이 느끼는 고통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고 싶었던 것이다. 희생자는 누구던 상관없다. 단지 만만한 표적으로 삼을만한 약자가 의미가 된다. 차례차례 자아비판이 이어진다. 그럴싸한 기획력과 아이디어 따위는 건전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 왜 신간의 판매 실적이 저조한지, 작가의 원고가 시원치 않은지, 편집이 왜 지지부진한지, 그런 질문이 던져지고 합당한 대답은 애초에 기대하지 못했던 것처럼 고요히 바닥에 가라앉는다. 그리고 쉴 새 없이 2차, 3차 공습이 떨어진다.


 오늘은 별일 없이 비판이 이어지다 회의가 종료되는 듯 보였다. 편집장이 쓸데없는 아이디어를 내놓지 만 않았다면…… 편집장의 생각은 꽤 옳아 보였고 성공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하지만 대표는 장점보다는 단점을 찾아, 편집장의 생각을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아예 회의 자체를 망쳐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공식적인 석상에서 편집장에게 욕을 대놓고 할 수는 없었을 터, 그는 대표가 아닌 책을 읽는 독자로서, 또는 불만을 가진 고객의 입장에서 출간된 책의 문제점과 신규 사업 아이디어를 문제 삼다가 결국 편집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시퍼런 날이 잔뜩 선 피가 묻은 욕은 덤으로. 마치 콜센터 상담원에게 이유 없는 욕을 퍼붓듯, 화풀이하듯 대표는 편집장을 저주했다.


 당신과 함께 이 공간에서 지낸 지 10년이 지나간다. 감정의 높고 낮음, 감점의 폭을 알 수 없는 당신. 당신의 실패에 대한 망상과 온갖 부정적인 언어폭력을 당할 때마다, 왜 이 업계를 떠나지 못하는지 나의 무능력을 책망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아이디어 자체에 악담을 구사하는 당신의 벌건 얼굴, 파도치듯 출렁거리는 입술, 치켜올라간 매서운 눈빛, 벌렁거리는 콧방울이 내 앞에서 군무를 춘다. 


 불투명한 당신의 미래, 안절부절하지 못한 채 반대편에 서 있는 직원들의 나약한 영혼을 동시에 바라본다. 나는 비난의 화살이 누구인지 잘 안다.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관찰자가 되어, 간접화법을 구사하며 비난의 중심에서 멀어지려는 당신의 간악함을. 마치 자신은 비판을 하는 갑의 입장이 아닌 독자의 가면이라도 둘러써서, 실컷 욕이라도 퍼붓고 싶어 하는 당신의 속마음을, 얄팍한 간계를 잘 안다.


 당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크나큰 부를 거두고 누구든 감히 넘볼  수 없는 물질적인 성을 구축했다는 것을 안다. 당신이 높은 성벽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추잡하고 더러운 욕설을 우리에게 퍼부을 때마다, 견고할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든든한 성벽도 당신이 내뱉은 말들이 부메랑이 되어 당신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언젠가 그 든든한 성벽도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그것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예상보다 우리가 흔들리지도 않으며, 꽤 튼실한 방어막 덕분에 그런 공격 따위들은 무기력하고, 바깥으로 전부 튕겨낼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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