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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29. 2018

마음

나에게는 확신이 찾아오지 않았어

 마음, 무한히 흐르는, 썩는 것을 거부하는, 가끔 파격적이면서도 침체에 지배당하는, 붙잡을 수도 없는 세계. 너를 읽고 싶어도 달아나기만 하는 역동성에 이내 무릎을 꿇어야 한다. 내 깊은 열망을 듣고는 있는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열정으로 둔갑시킨 무지를 너는 제대로 볼 수 있는가.


 너는 오늘도 대지를 무너뜨리고 너의 영혼을 결박시킬 기세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푸르던 나무의 옛 기상과 보이지 않는 어둠을 동시에 바라보는 너의 힘을 잃은 두 눈, 앙상한 가지의 숨결, 가녀린 마지막 속삭임을 듣고 있느냔 말이다.


 너는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살뜰히 보살핀다. 목격자가 되어 또 죽음의 예비자가 되어 먼 훗날의 몰락을 회상하는 것으로. 유구한 물결 위에 몸을 사릴 여유도 없다. 불규칙한 시선으로, 발가벗은 몸뚱이로 가끔 강물을 마시다 덮을 뿐. 씻겨도 사라지지 않는 너의 불완전함, 무가치함, 불투명함, 안개에 숨은 진실들은 어찌 되는가.  



 눈물 한 방울을 툭 떨어뜨린다. 저속으로 비현실적인 부피로 공간을 장악하는 것이다. 눈물은 삶의 구원이 되는가. 진실과 정면으로 대면하도록 길을 안내하는가. 길을 따라 흘러가볼 수 있는가. 믿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적셔도 말라가는 너, 숨을 불어넣어도 온기를 잃는 너,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부실한 안정을 탓하는 너. 그래, 안정감은 태초에 존재하기는 했었는가. 불안과 위태로움의 격언이 새겨진 의자에 앉아서 너는 친구들과 종종 어울리긴 했었지. 그것이 관념인지 사유인지 단순하게 지나가는 몰상식한 인간의 치부인지 결과는 알 수 없어도, 어쨌든 미지의 존재와 담론을 펼치고 있다는 기억은 볼 수 있었겠지.


 너를 볼 수 없다고 그래서 형체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고 누가 너의 증거를 의심은 했던가. 눈을 잠시만 감아도 눈꺼풀이 이렇게 무게감으로 억눌린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너의 존재는 선명하기만 한데. 네가 나를 떠나 바닥으로 꺼져간다는 걸, 내 육신의 거처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대지에서 다시 터널로 영역을 확장한다는 사실로도 너는 살아 가는데. 그럼에도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


 너는 말 없이 강물 한 가운데 깊은 의자에 앉았지. 네가 경험한 과거의 등불을 밝히기 위해, 형이상학적 이론을 증명하기라도 할 것처럼, 검은 방 한가운데, 외로운 빛의 더미 위에 걸 터 않았지. 기나긴 대화를 시작해야 했어. 기계가 타이핑을 치듯이, 흰 종이 위에 글자를 연속적으로 펼치는 방식으로 말이야. 진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자 위에 산처럼 거짓이 난무하고 또 스스로를 여백에 숨겨두는 방식으로 거짓은 춤을 추지.


 나는 물론 글자들을 해독할 수 없었지. 나의 지식과 쌓아 올린 얕은 경험으론 너의 영역에 발일 디밀 수조차 없었지. 네가 낳은 자식들이 가끔 나에게 영향을 미치긴 했어. 몇 가지는 인간의 형상을 띠기도 했으니깐. 그럴 때마다 나는 구원을 받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늘 그랬듯이 나에게 확신이 찾아오지는 않았어. 믿음이란 신의 선물을 기대한 건 부질없는 짓이었지. 네가 나를 가두었지만, 그 속에서 엉키고 설킨 나는 해방되기엔 다소 부족한 그래도 희미한 소망에라도 기대어보고 싶은 작은 자기 만족 같은 것이었지. 결국 그릇에 담아보는 건 어떨까. 네가 남긴 언어의 향기를, 여백의 미소를, 불투명의 단면을 하나씩 담아보는 거지. 너에게 묻고 싶다. 그릇의 너비 또는 깊이는 충분한지,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지, 떨어뜨리지 않을, 날아가지도 않을 만큼 적당한지, 담아도 될 만큼 준비는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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