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 보살피다
https://www.youtube.com/watch?v=uRJl7mTht5g&t=100s
나이를 먹으니 기억의 등이 자주 깜빡 깜빡거린다. 마음속에 각인시키겠다고 다짐한 것도 자주 잊고, 중요한 약속조차 가끔 잊어서 당황한다. 이러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 셀비'처럼 단기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려 기억이 엉뚱하게 재편집되거나 과거를 왜곡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다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먼 훗날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돌아다니면 어떻게 할 거냐는 사차원적인 질문이었다.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피아노 시인, 쇼팽에겐 그를 따뜻하게 보살핀 '조르주 상드'라는 여인이 있었다. 마요르카 섬에서 쇼팽과 상드는 동거를 시작하여 약 9년 동안 함께 지냈다. 예민하고 병약했던 쇼팽은 작곡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상드의 살뜰한 보살핌과 헌신적인 사랑으로 예술적 영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가 남긴 명곡의 대부분은 상드와 함께 지낸 기간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나약하고 병든 쇼팽에게 상드의 헌신적인 보살핌이 없었다면 우리가 듣고 있는 쇼팽의 작품들이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빗방울 전주곡(Rain Drop)이라 불리는 쇼팽의 "24 Preludes Op 28 No 15 in D flat Major"는 쇼팽이 상드와 마요르카 섬에서 살 때 작곡했다고 한다. 비 오는 날, 상드가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 눈물을 흘리며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의 감성이 드러난다.
보살핀다는 것은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다. 사랑은 서로를 돌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아픈 날이 많다. 아픈데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더 서럽고 아픔이 두 배가 된다. 중학교 시절 남들이 잘 걸리지 않는 병을 앓았다. 바이러스성 장염이었다. 열흘간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해서도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아 추가적으로 열흘 이상을 누워지냈다. 미음을 제외한 그 어떠한 음식도 몸에 받지 않았다. 좋아했던 빵조차 몸에서 거부했다.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며 보살피던 분은 어머니셨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가슴 아픈 속담도 있다. 영원할 것 같던 조르주 상드와 쇼팽의 사랑도 안타깝지만 9년을 넘지 못했다. 늘 병약하고 예민하기만 쇼팽을 보살핀다는 것은 사랑의 감정 하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을 터. 상드는 결국 사랑을 버리고 만다. 깊은 사랑이라도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지는 않다.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걸 바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것이 현실이다.
완벽한 사랑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사랑은 남녀가 교환하는 사랑과 성질이 다르겠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란 결국 처음에 가졌던 설렘이 전부는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설렘보다는 배려와 희생이 사랑을 지배하는 건 아닐까? 그래야 관계도 유지되는 것이다. 설렘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감정은 익숙함으로 바뀌고,현재의 행복을 유지하려는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 사랑하는 사람도 오래 살면 단점조차 희석되고 무던해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설렘에서 의리 또는 동지와 같은 감정으로 변화한다. 설렘이 나를 떠났지만 상대방을 보살펴야 한다는 감정을 나눈다.
김형경의 <사람풍경>에서는 사려 깊고 헌신적이며 이상주의적인 사람, 의리 있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에 대하여 내면에 분노가 억압되어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한다. 저자는 정신분석을 받고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분노를 마주한다. 분노와 화를 감추고 억압하다 보니 외부의 상처가 되는 말,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사실은 자신을 타인보다 우선순위에서 밀어놓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의미다. 주위에도 유달리 그런 사람이 있다. 자신보다 타인을 더 배려 하고 보모처럼 보살펴주려 애쓰는 사람, 키다리 아저씨처럼 필요할 때 나타나서위기에서 누군가를 구해주는 사람 말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그만큼 많은 상처와 분노를 마음에 숨겨놓고 살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않으며 예민하다는 증거니까.
나는 타인을 보살피는 것에 취약한 사람이다. 늘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살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기적인 생각만으로 세상을 살기란 힘들다는 것도 깨달았다. 직장에서는 리더로 팀원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을 보살펴야 하는 책임, 글쓰기 모임에서는 날카로운 비평으로 그들이 성장하도록 이끌고 보살펴야 하는 책임, 가정에서는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생계의 책임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를 보살펴주던 사람이 하나둘 떠나가는 것을 본다. 옆에서 영원히 나를 보살펴주실 것 같던 부모님도 언젠가 떠날 수밖에 없다. 이 세상과 마지막 이별을 할 때 나를 마지막으로 보살펴줄 사람은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