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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14. 2018

스쳐 지나가는 단상들 #4

희망의 메시지


이번 주 글쓰기 과제에 나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클래스를 리드하는 입장에서 배우는 사람으로 관점을 전환해보는 것이다. 이유는 나도 내 감정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신성 욕구와 스르로에게 위로를 안기고 싶다는 정화 욕구가 심연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글은 학인에게 피드백을 받지 않는다. 나는 학인의 성장을 도우려 모임을 주관하고 있으니까. 이 글이 망신살을 뻗치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분노 

첫 번째는 분노라는 키워드다. 그 어느 때보다 나는 분노에 융단폭격을 당하고 있다. 문제는 그 분노가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이 무기력을 더 증식시킨다는 점이다. 폭격을 당한 후, 구덩이에 몸을 숨기는 게 전부다. 한 번 터진 구덩이가 폭격을 받을 확률이 미미하다는 걸 알기에. 구멍 난 마음을 안고 웅크린 채 바닥에 누워있다. 그것이 최선인가? 묻고 싶다.

분노의 원흉은 대부분 직장에 쏠려있다. 개인적인 문제일까? 직장의 구조적인 결함 때문일까?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 문제일까? 직장이 내포하고 있으나 수정하지 못하는 오래된 병폐 탓일까? 직업을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20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회사 이름과 대표를 사랑한 적이 몇 년이었나,라고 생각해보면. 구역은 절반으로 나누어진다.

해결책은 나 스스로도 알고 있다. 끝없는 소유욕이 굴욕을 감당하게 한다. 견딘 만큼 보상이 돌아온다는 걸 알기에, 분하면서도 참는다. '존버'정신으로 '졸꾸'할 대상을 찾아서, 그것으로 뚫린 가슴을 채우고, 괴로움을 삭히려고. 돈을 받아들고 해맑게 웃으며 속물근성을 증명하고 마는 나.

#활기

공식 이중 생활자인 나로서는 어두운 구석이 있다면 밝은 면도 있다고 믿는다. 삶은 고등어처럼 살아서 요동을 치지 않는가? 설레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도전할 가치가 없다고 믿는 편이다. 설레는 일이란 애석하게도 직장과 관련성이 떨어진다. 직장과 설렘을 연결하는데 성공하신 분이 있다면 부러울 따름이다. 질투가 폭발할 지경이다(웃음). 혹시 내가 불행하지 않느냐고 의문을 품는 분들이 계신다면, 앞에서 열거했듯이 인생이란 어차피 어두움과 밝음이 공존한다고 믿기에, 인생이 내리막길만 타는 건 아니기에, 오늘 감정 리듬이 내려가다가도 다시 회복 곡선을 그릴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저녁이 있기에 걱정으로 나를 감싸지 않는다.

나는 흔하디흔한 O형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시장 한복판에서 여기 O형 있으면 나와보라고 외친다면 나 역시 하릴없이 손을 들고 마는 그런 평범한 인간이다. 스트레스를 쉽게 받기도 하지만 잊는 것도 빠른 편이다. 누군가 옆에서 툭 치거나, '괜찮아 뭐 어때?'라는 말 한마디에, 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얼었던 마음이 녹거나 긴장된 근육이 쉽게 풀리는 타입이다. 게다가 더불어 함께 공부 중인 학인들이 있지 않은가. 성실하고 꾸준히 글쓰기에 임하는 그들의 진지함을 보면서 나 역시 삶에 응축된 긍정의 본질을 흡수한다.


'형제여, 그대가 한 가지 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그대의 덕이라면, 그대는 이 덕을 그 누구와도 함께 가지지 못한다. 물론 그대는 이 덕에 이름을 붙여주며 쓰다듬어주고 싶으리라. 이 덕의 귀를 잡아당기며 장난이라도 치고 싶으리라. 그러나 보라! 이제 그대는 이 덕의 이름을 군중과 함께 나누게 되었고, 그대는 그대의 덕과 더불어 군중이 되고 가축의 무리가 되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두려움

요즘 뵈는 게 없다. 자기검열에 빠져있다가는 할 말도 못 하고 살다, 죽을 것 같아서 전부 게워내련다. 축적된 역한 것들을 모두 버려야 팔팔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두려움 따위는 없다. 어차피 눈을 떠도 보이지 않고 감아도 보이지 않는다.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한다는 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닥치는대로 휘갈긴다. 뭐 어쩌라고? 책임만 지면 그 뿐 아닌가.  

이렇게 말이라도 당당하게 떠벌이고 나면 평화가 찾아온다. 두려움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 두려움이 극복의 대상일지는 모르겠으나, 스쳐 지나가는 단상 중의 하나라고 취급하면 복잡한 생각도 사라진다. 학인들에게 내준 과제를 흉내내봤다. 내 졸필을 읽고 나처럼 쓰지만 않는다면 달필의 세계와 가까워질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겨본다. 

https://sites.google.com/view/wordmaster/%ED%99%88



*존버 : 존나 버티기

*졸꾸 : 졸라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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