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16. 2018

스쳐 지나가는 단상들 #5

나는 나는 법을 배웠다.


나는 걷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나는 계속 달린다. 나는 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나에게는 누군가가 나를 밀고 나서야 움직이게 되는 그런 일은 없어졌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장희창 저




#폭주

버스 기사는 말없이 폭주를 했다. 불만이 입속에 가득 배어 있었다. 그는 불안을 과시하기 위해 달렸다. 그는 불안의 교주인 셈이었다. 그가 가진 하나뿐인 종교였고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다. 여자가 첫 번째로 볼멘소리를 외쳤다.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발을 헛디딘 모양이었다. 날카로운 입술이었고 매서운 눈매였다. 남자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운전석 바로 뒤에 서 있던 나는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쥔 채 위태로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이 든 남자가 곱게 운전하라고 짜증 섞인 소리를 두 번째로 내질렀다. 적당히 부드러운 말, 뼈가 담긴 말에 기사는 알았습니다,라고 고분고분 대답을 했다. 그럼에도 급출발 급제동은 줄어들지 않았다. 좁은 도로를 따라 손잡이 하나에 매달린 채 고속으로 질주를 했다. 

나는 서 있었지만 가속했다. 멈춰 있었지만 계속 운동을 해야 했다. 멈춤과 움직임 사이에서 작용과 반작용을 나눴다. 관성의 법칙만큼 나는 앞으로도 튀어나갔고 뒤로도 물러섰다. 정신도 같이 들락날락했다. 짜증이 났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는 비겁한 사람. 달리기를 거부하지 않는 순종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서 있었다.




#날다 #박준 #저녁 #금강

나는 하늘을 가만히 갈랐다. 하나의 계절을 건너 상상의 숲을 헤치고 어둠 속에서 날개를 차분히 접었다 펼쳤다. 창공 너머엔 깊고 푸른 점이 산 자를 기다렸다. 노래를 찾아서, 구원을 찾아서, 집을 떠나는 나는 친구의 얼굴을 작은 가슴에 머금었다. 무의미의 찬가는 창공에서 가끔 옅은 숨을 몰아쉬었다. 말하자면 나의 날갯짓은 두꺼운 진공을 통과하는 목소리였다. 오직 고독뿐인, 쉴 수도 없는, 반복이 전부인 암흑을 향해서 모험을 떠나는.
 
하늘은 말도 없이 감은 두 눈을 품었다. 포근하게 양 팔을 크게 벌리고 나를 천 년 전부터 기다렸다고 화답했다. 나에게 여행이란 굳은 날개를 기다랗게 뻗고 끝없는 도약을 받아들여야 하는 도전이자 과제였다. 눈을 감은 나는 보이지 않아도 멈추지 않았다. 순순히 어둠에게 도약을 맡길 뿐이었다. 기억을 차츰 잃어갔다. 기억은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졌고 몸에서 분리되었고 다시 부스러지고 소각됐다. 
 
한동안 비밀을 캐려고 허공을 두드리기만 했다. 신열이 났고 몸이 비대해져서 오른 만큼 곱절로 병을 앓기도 했다. 아파도 누워서는 안 되는, 갈 곳이 없어도 날아야 하는 운명이 나에게 자유가 되었으니, 다신 울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는가?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죽는다 하여도 하늘을 삼키고 구름을 마시는 존재로 무한히 살아야 했다. 바람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날개를 한 바퀴 지나쳐 짧은 파문을 일으켰다.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는 것 같았다. 그래 여행을 떠났지, 창백한 점을 통과하면 용서를 받는 거라고,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거라고, 멈추지 않고 날아가. 힘을 내는 거야. 용서를 빌어.
 



박준 시인의 ‘저녁’을 읽고 시간을 생각했다. 시간은 소중하다. 소중한 만큼 아껴야 하지만 가끔 소비하느라 흐름을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의 낭비벽이란 건 시간의 엄숙함을 두고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더 두려운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완벽하지 못하기에, 불완전하고 한정된 시간 앞에서도 방황을 해야 하기에. 

소멸, 몇 세기가 지나면 우리는 증거 할 수도 없는 존재가 되겠지. 그 흔한 먼지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수 없는 거짓이 될 테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도, 두 가지 세계가 분명하여도 절망으로 기울지라도 슬퍼서는 안 된다. 소멸이란 새로운 만남을 기약할지도 모르니. 너와 나, 개별자인 우리가 충돌을 거듭하다 이해할 수 없는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마지막엔 환희를 맛볼지도 모르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거침없이 하늘의 품으로 날아오르고 파고들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스쳐 지나가는 단상들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