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25. 2018

스쳐 지나가는 단상들 #9

시 필사와 첫눈


필사

박준 시인 - "지금은 우리가"




11월에 첫눈을 맞았다. 어둠이 활기를 잃을 무렵 눈은 소리도 없이 빈자리를 차지했다. 어떤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을이 떠나는 걸 탄식하는 소리 같기도, 당신이 세상을 여는 첫 번째 발자국 소리 같기도. 새 손님을 맞이하는 분주한 소리 같기도.



눈은 따뜻한 날에 찾아온다는 당신의 말이 창밖에서 빛이 났다. 말은 가벼웠지만 가슴에 눈처럼 쌓였다. 미끄러지지도 않고 녹지도 않은 채. 차분하게 기다렸다. 당신을.




창문을 살짝 비틀었다. 바람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었다. 올려놓은 온도가 내려가면 애써 만들어 놓은 세상과 나의 구도가 무너질 것 같아서. 




카메라를 들고 기념을 하고 싶었다. 그곳에 멈춰서 나는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어딘가에 엉켜있었지만. 세상을 담기에는 시야가 좁았다. 그럼에도 시간을 잠시 정지시켜야 했다. 계단이 보였다. 내 눈은 온통 흑백사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