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플라이 여정
떠나야 한다. 왜 떠나야 할까? 답은 자명하다. 시간이 무한하게 흐르니, 우리는 그 물결에 이미 동승하지 않았는가. 떠날지 떠밀릴지 선택은 할 수 있을까? 떠나야 한다면. 그래 어디로 가야 할까. 길은 없다. 단지 떠나야 한다는 마음만 앞설 뿐. 현실의 흔한 제약 사항들이 길을 가로막는다. 어지럽다. 하늘이 푸름을 벗어던지고 잿빛으로 응원을 한다. 그리움의 파도가 손을 잡아끌고 나는 시선을 잃는다.
출발지도, 목적지도 없는 하얀 티켓이 한 장 있다. 어디든 원하는 하늘, 대지, 마지막으로 바다를 그리면 그뿐이다. 펜을 들고 머릿속을 더듬는다.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하기엔 물체들이 부끄럽게 고백을 내민다. 보이는 거라곤 작은 암흑과 그것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불손함, 나는 그들의 야욕을 뿌리치고 싶다.
그림 대신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무력감이 한없이 불어오는 바람에 날짜를 적을 수 없지만,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에 집착해야 한다는 논리 하나에 집중한다. 연결고리,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열쇠말이다. 말하자면 나는 열쇠를 잃었다. 원래 가지고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모순된 역사의 반복, 과거를 잃은 건지 스스로 미래를 덮은 건지 알 수 없는 중간지점에서의 묘한 쾌감. 나를 가로막은 수많은 벽, 통과할 수 없는 영원의 출입문 앞에서 숨을 죽이며.
나는 떠나고 싶은 걸까? 떠나는 마음에 기대고 싶은 걸까? 떠나는 마음을 핑계 삼아 가슴을 파고드는 칼날 같은 운명에 사로잡히고 싶은 걸까. 나는 포로인 셈이다. 일상의 밑바닥에 깔린 온갖 저음들에 포위당하고, 오염된 고음에 제압당하는 것이다.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은 가지 않은 길을 밟아보는 꿈을 꾸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 번역
그래, 우리에게는 늘 두 가지 길이 열려있다. 지금 이 순간, 선택은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길로 나서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길인지 굶주림이 가득 찬 길이 놓여있을지 깨닫지 못한다. 완성은 하지 못하더라도 직관을 믿어야 한다. 후회 없이 마치 작은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묵묵히 여정에 나서야 한다.
내 확신에 대한 이물감을 벗어버리는 일이 우선이다. 돌아보지도 말고 후회하지도 말자. 모험을 떠나듯 당신의 물결에 휩쓸려 가련다. 환상이든 꿈이든.
https://www.youtube.com/watch?v=NMnW2-kibCs
https://www.youtube.com/watch?v=wUYY1RHemKM
이토록 새파란 하늘에
이토록 그리움만
남아있는 듯해
멀어지는 것들과
붙들고 있던 것
저만치 흘러가는
강물에 떠밀려 간다
영원할 것 같던
그리운 마음들 모두
수많은 바램들 모두
끝없이 흘러
아무리 애를 써봐도
벗어날 수 없던 너의 영혼
설레는 밤
간절했던 꿈
모두 두고 간다
남아있는 미련과
목마른 감정들
봄 날의 웅성임도
파도에 부서져 간다
영원할 것 같던
그리운 마음들 모두
수많은 바램들 모두
끝없이 흘러
아무리 애를 써봐도
벗어날 수 없던 너의 영혼
별이 지던
잠들지 않는 밤
말 없는 외침들
난 눈을 감는다
끝이 없는 어둠이 나의 앞에
나의 눈으론 가늠할 수 없는
좁은 이 길 보이지 않는 사랑
무엇보다 깊은
내게 주어진 끝 없는 질문에
그저 걷는다
사랑했던 모든 순간
아득한 물결 너머로
멀어져 간다
돌아보면 멈출까 봐
더 멀리 가야만 해
날 부르는 그곳으로
아주 오랜만에 음악 관련 글을 썼네요. 노리플라이의 '여정' 뮤직 비디오를 보고 생각을 늘어놨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 공지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롯데백화점 평촌점에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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