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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27. 2016

92년 여름의 Summer Of '69

Bryan Admans 와의 추억들...

92년 늦은 여름 무렵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아득한, 새로운 기억들에 자리를 양보한 옛 기억의 자취들... 나이를 먹게 되면 가끔은 머릿속에 떠도는 옛 이야기에 의존하게 된다. 그때가 단지 여름쯤이었다는 것, 그리고 휴가 덕분에 그 끔찍한 곳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 서울행 버스표를 받아 들고 갈 곳 없어서 터미널 주변 골목 사이를 배회했다는 것, 그 정도가 지금 내가 더듬는 그때 저민 기억들의 파편들이다.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때의 나를 만났다. 귀향에 대한 본능과 시간이 멈춰버린 발검음을 재촉하기 위해 어딘가에서 미래를 생각했던 나, 끝날 것 같지 않은 공간에서 불확실한 탈출을 그렸던 나, 만져질 것 같지 않은.. 손 닿지 않을 것 같은 미래만을 쫒던 나, 지금은 성장해버린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내와 마주 앉는다. 나의 과거에게 묻는다. 


'그때 너는 어느 곳에 있었니?'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었니?' 


나는 믿고 싶다.  그때의 내가 생각 없이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방황을 하기 위한 목적들을 무의미하게 생산하지 않았을 것을... 뚜벅뚜벅 갈 곳 없는, 정체모를 무언가를 찾기 위해 번뇌하지 않았을 것을... 찾을 수 있는 모든 기억의 편린들을 끄집어 본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 재구성해본다. 



휴가를 위해 찾은 강원도의 끝자락 원통 시외버스 터미널이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그곳에서 방황했다. 그러다 문득 왜 음반샵에 들렀는지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라이언 아담스'의 신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던가? 아님 따분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을까? 음반을 고른다는 것은 어쩌면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내 취향의 음악을 틀었던 음반샵 주인장과의 음악적인 주파수가 그때 그 시간에 서로 통했을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스쳐간다.





GOP에서의 군생활은 고단함보다는 무료함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시간이 많긴 했어도, 인생을 생각할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소초에 혼자 앉아서 시간을 보낼 때는 라디오, 누군가 녹음해준 음악이 들어있는 테이프 등이 유일한 나의 친구였다. 그때는 음악에 지독하게 집착을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 팝 등을 미치도록 녹음했었고, 어느새 살펴보니 내가 제작한 테이프들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가고 있었다. 녹음했던 기억들이 오래갈 줄 알았다. 듣기 위함 이었는지, 남기기 위함 이었는지 목적은 불분명했다. 내가 없어지기 전까지 영원할 줄 알았던 테이프에 기록된 조각들도 결국 지워지고, 버려졌으니 참 재미있다. 인생이란  덧없다... 작은 마그네틱 테이프 속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떠올리다니... 모든 것은 사라질 뿐인 것인가?. 



음반샵의 기억은 분명했고 영원하다. 잠깐이나마 시간을 멈추고 현실을 잊을 수 있던 야릇한 경험이었다. '브라이언 아담스'의 LP 한 장을 주저 없이 손에 들었다. 보잘것없는 내 주머니에서 나온 몇 장의 쌈짓돈을 부끄럽게 주인장에게 건넸다.






브라이언 아담스는 그 시절 과거의 내가 열광했던 가수다. 캐나다 태생으로 전 세계적으로 1억 장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영국인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외교관이라서 어릴 때부터 전 세계를 옮겨 다니면서 살다 보니, 많은 곳에서 음악적인 경험들을 겪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어릴 적 경험들이 현재의 음악적인 결과를 구축했다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주로 나이트클럽에서 밴드 연주를 하면서 경력을 쌓았다고 하며, 1980년 데뷔 음반 "Bryan Adams"를 발표했지만 그다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의 두 번째 음반 "You Want It You Got It" 은 2주 동안 미국에서 녹음되었고, 이 음반에는 라디오에서 히트한 "Lonely Night" 가 포함되었는데, 큰 명성을 얻지 못했다. 세 번째 음반에는 "Straight From the Heart", "This Time", "Cuts Like a Knife"등의 곡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각각 빌보드 핫 100에서 차트 10위, 15위를 차지했다. 1984년에 발표된 "Reckless"는 빌보드 200에서 드디어 1위를 차지했다. 수록된 싱글곡 "Run To You", "Summer of '69", "Heaven"은 모두 톱 10에 랭크되었다.

 

 

아마도 군 시절의 내가 유달리 브라이언 아담스에 열광했던 것은 순수한 'Rock Spirit'의 기본 정신 때문이었을 것이라 진단해본다. 나를 가두는 그 모든 것, 나를 억압하는 그 모든 것에 저항하는 'Rock'의 강렬함, 그리고 몇 가지 악기만으로 구성되는 단조로움 속에서 뜨거운 열정을 노래하는 그의 자신감이 좋았다. 지쳐있을 때, 쳐져있을 때 에너지를 듬뿍 심어주는 그의 노래들에 흠뻑 젖어있었다. 이를테면 'Before The Night  Is Over'와 같은 노래...

 



 


그날 내가 구매했던 앨범은 "Waking Up the  Neighbours"이다. 지금 현재 그의 테이프부터 시작해서 LP, CD 등 거의 모든 앨범을 보유하고 있고, 국내에서 구하지 못하는 공연 실황 DVD라던가, 블루레이는 해외 직구로 구매한 적도 있고, 그런 방법으로까지 입수가 불가능하다면 마지막엔 음원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할 정도였다. 당시는 CD보다는 LP가 대세였고, CD로 점차 분위기가 넘어가는 세대였다. 덩치 큰 그의 LP를 들고 서울 올라오는 길에 날 설레게 하는 것은 고향에 향하는 기쁨보다 그의 신보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다.



 



한국 사람에게 유명한 'Heaven'이라던지, '(Everything I Do) I Do It Eor You' 같은 곡들이 워낙 발라드 성격이 강해서 그렇지, 원래 그의 성향이 조용한 발라드 스타일은 아니었다. 해당 앨범 대부분의 트랙이 강한 기타와 비트 있는 드럼으로 구성된걸 보면 단순하고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락의 기본 정신으로 돌아간 앨범이라고 볼 수 있다. 절절한 허스키 보이스와 락이 절묘하게 잘 양념이 버무려진 앨범이라고 할까? 언제 들어도 신나는 "Can't Stop This Thing We Started",  처음엔 느리긴 하지만 서서히 분위기가 고조되는 "Thought I'd Died And Gone To Heaven" 그리고 대히트를 친(Everything I Do) I Do It For You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곡들이 브라이언 아담스가 초심으로 돌아가 락을 다시 제대로 하고 있구나 라는 감명까지 준 앨범이었다.




사실 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가수들의 대부분이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나이를 먹게 되면 자연스럽게 힘도 빠지고 예전 같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잠깐 동안이라도 활동을 해주기라도 한다면 팬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인데,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현재까지 변한 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브라이언 아담스를 보면 대견(?)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20년이 넘도록 활동하면서 어떻게 보면 아주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할 정도로 소박하고 진솔하며, 잘생긴 외모도,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도 아니지만 그의 호소력 짙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발라드에서 더 큰 끌림으로 다가온다. 그의 솔직 담백한 노래와 이제는 팬과 같이 늙어가는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푸근한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락 스피릿에 충만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특히 그의 수록곡들 중 기타 주자 키스 스코트(Keith Scott)의 연주인 ‘Summer of 69’는 기타 지망생들의 교본이 되었다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기도 하다.





삶이 지칠 때마다 이곡을 찾는다. 그리고 그때 어두운 시절을 떠올리며 나의 과거를 위로한다. 과거의 나를 통해서 미래의 나를 그린다. 그리고 내 안에 사라진 에너지를 회복한다. 오늘도 Bryan Adams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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