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인가 싶었다. 내 닉네임이 ‘심야서재’가 아닌가. 늦은 시간이어도 웬만하면 답변해주는 것이 나의 영업방침이다. 이런 질문이 많이 오냐고? 그게 꽤 많이 온다. 생각보다 자주.
“공심님이 발행한 “당신이 블로그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글 잘 봤어요. 저도 그 글에서 힘을 얻어 방치해둔 블로그를 다시 열었거든요. 그런데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머릿속이 하얗더군요.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해 커피만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엔 일상을 주제로 글을 썼어요. 근데 제가 잘 쓰는 건지 객관적으로 파악이 안 되더라고요. 잘 쓰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글쓰기 클리닉을 열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욕을 덜먹을까? 대답에 따라 질문의 제왕인 소크라테스가 될 수도, 궤변론자 무리인 소피스트가 될 수도 있다. 날카로운 질문이 가슴을 파고든다. 두렵다. 긴장하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잘 쓴다는 문장엔 허점이 포함되어 있어요. 잘 쓴다는 기준도 명확하지 않고요. 글이란 읽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지거든요. 톡으로 드리는 거라 한계가 많지만, 일단 어제 쓴 글을 오늘 읽었을 때,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이 성장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거예요.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적어도 잘 쓰게 될 기반은 만들어진 셈이에요”
“어렵네요. 어제 쓴 글이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이불 킥을 하고 싶더라고요. 모두 삭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요?”
“절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얼굴에 철판을 까는 한이 있더라도 뻔뻔하게 글을 써야 늘거든요. 수치심과 공포를 극복해야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조금 해보다가 그만두면 걸어온 길이 무색해지는 거예요. 잘 쓴다는 문장에 현혹당하지 마시고 꾸준하게 쓰세요. 회사에서 철야를 하고 새벽 4시에 집에 들어와서 잠깐 세수하고 다시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글을 쓰겠다고 작정해야 합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쓰지 못할 거라는 각오로 글을 쓰세요. 그런 마음으로 쓰다 보면 잘 쓰는 방법은 스스로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쓰려고 하시나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지 그의 태도를 보고 싶었다. 채팅창에서 숫자 1이 사라졌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해가 거의 뜰 무렵 메시지가 날아왔다.
“제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요”
누군지 알 수 없다는 말, 그는 자신의 정체성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만 드러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의도치 않는 모습이 튀어나오는데, 그 이유가 그를 절망시킨다고 대답했다.
“답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찾으셔야 합니다.”
“글쓰기가 선생님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는 하지 마세요. 다만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도록 자신감은 줄 겁니다. 해결책을 찾을 지혜도 줄 것이고요.”
글쎄 글을 쓴다고 나를 찾을 수 있을지 확답은 내리지 못하겠다. 물론 쓰는 동안 생각할 시간은 충분할 테니 내면의 세계로 조금 더 근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이 언제나 쓸모 있는 것도 아니며 생각을 글로 풀어낸다고 하여도 그 문장이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한 것인지 해석할 수 없다. 글쓰기란 생각과 표현의 영역 사이 어디쯤 있겠지.
인간은 질문에 직면할 때마다 대답을 스스로 찾아왔다. 경험해야 답을 찾을 능력도 생긴다. 해답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무조건 고, 와 같은 자세다. 다만 누구나 강조하는 단어는 당신도 잘 아는 ‘꾸준하게’다. 다만 혼자 실천할 자신이 부족하다면 글벗을 두는 것도 좋겠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글벗이라면 그 어떠한 도전이라도 해낼 자신감이 생길 거다.
다음 매거진 글은 'Mee' 작가님의 <바보야, 문제는 문체야>입니다. 여러분이 쓴 글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땐 문체를 점검하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Mee 작가님의 문체 이야기 한 번 들어볼까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막막하고 두렵다면 지금《매일 쓰다 보니 작가》글을 추천드립니다. 꾸준하게 글을 쓰며 자신만의 무기를 단단하게 다진 작가의 노하우가 궁금한 분들은 매거진 구독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