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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24. 2020

만료일을 넘길 풍광들

소녀들의 웃음


1

버스를 탔어. 정동진을 지나 어느 해안 마을쯤을 지나가고 있었지. 노인들만 가득한 그저 그런 허름한 마을버스, 맨 뒤 구석자리에 몸을 구겨 넣었어. 한숨과 먼지를 동시에 털어내니 꽤 상쾌해졌어. 정오라서 그랬을까? 5월치곤 꽤 더웠던 것 같아. 창문을 열고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다고 낡은 투정 따위를 혼자 부리고 있었으니까.


습기가 바닷바람에 실려 한 움큼 날아오더니 창문에 계속 부딪히는 거야. 안과 밖의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처럼 넌 행동하더라. 너도 가끔은 안쪽의 세계가 궁금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어. 바람엔 푸른 바다 빛 내음이 섞여 있었어. 메말라있지만 가끔 이유 없이 촉촉해지기도 하는, 너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어떤 바람 같은 거 말이야.


몇 정거장을 더 지나야 내가 머물 곳이 나올까 궁금했지. 비슷한 모양의 바위들이 구불거리고 버스 뒤편에서는 파도가 거세게 일렁이기를 반복했어. 곧 만료일을 넘길 풍광들이었지. 카메라를 꺼내 저곳에 내 마음을 담아볼까. 오래 남기려면 메모 하나쯤 보관해두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해안 도로를 따라 계속 완성되어갔어. 아, 그래 생각이란 건 이렇게 틀을 갖춰가는구나. 깨달음이 얼핏 다가오기도 하다가도 또 잊히는 거지. 삶은 망각의 여행이니까.


소녀 무리들이 버스에 올랐어. 너덧 명이 앉아 힐끔 내게 시선을 옮기더니 다시 분주하게 떠들더라고. 웃음을 뒤집어쓴 아이들 같았어. 이성복 시인이 말한 대로 그 아이들의 웃음은 분명, 처음 펴보는 부챗살 모양이었어. 처음으로 포장된 물건을 갓 풀어볼 때, 느끼는 긴장감 같은 거 있잖아. 꼬깃꼬깃 구긴 상태가 분명했는데, 천천히 펼쳐보면 발그레한 소녀의 미소처럼 마음을 붉게 펴주는 거. 매끈하게 흐르는 윤기 덕분에 오후는 더 유쾌해지더라.


물론 살다 보면 언젠가 모두 낡아지게 될 거야. 시골 마을버스처럼 허름해지고 탁해지고 주름이 늘어날 테지. 그럼에도 웃음 같은 건, 영원히 곧게 펴진 부챗살처럼 살아가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르겠어. 소녀들도 나도 오후엔 늙지 않고 서서히 익어갈 테니까. 난 시간을 생각하다, 고개를 창문에 슬쩍 기댔어. 세월은 잊어두고 자야 할 것 같았거든.



2

코로나 바이러스가 멈추질 않을 작정인가 보다. 덕분에 기존에 누리던 행복들을 어쩌면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야구장을 가득 메운 함성도, 북적거리는 벚꽃길의 단란한 풍경도, 몇 년 만에 한 번씩 찾는 해외여행도. 모두 불가능해질지도. 행복의 양상도 형상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우린 앞으로 행복의 기준을 어떻게 재편할 수 있을까. 일상의 작은 기쁨들이 차츰 희미해져가는구나.



3

내가 좋아하는 곡 멋대로 소개하기

무한궤도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https://www.youtube.com/watch?v=eqfsIzIN2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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