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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pr 20. 2020

살아간다는 거 자체가 기적이다

일상 에세이


1

살아간다는 거 자체가 기적이다. 나는 살아 있어서 매일 기적을 체험한다. 어제 아침도 오늘 아침도 나는 살아있고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 아마도 내일도 살아있을 것이다. 이제 기적을 받아들여야 한다. 새벽이 찾아오면 가까스로 눈을 뜨며 피곤함을 토로하는 내면에게 일침을 가한다. 정신 차리라고, 세상이 활짝 열리지 않았냐고, 자리에서 굼벵이처럼 기어 다녀서야 되겠냐고.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결국 몸은 반응을 보였다. 몸과 마음이 가끔 분리됐지만, 어김없이 나는 걸었고 버스에 올랐고 지하철로 행보를 이었다. 그러니까 삶은 기적처럼 대상과 대상을 서로 연결하는 셈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이든 나는 마땅히 연결되어야 한다. 멈춤은 허락되지 않는다. 연결은 시작과 끝이라는 단어를 동시에 품고 있다. 출발하고 어딘가에 닿고 잠시 머무르다, 곧 떠나는 것의 반복,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윤회란 생명이 꺼지지 않아도 살아있다면, 스스로 반복되는 영원한 유지장치 같은 원리가 아닐까. 그러니까 자각할 수 있는, 죽음을 맛보지 않아도 연속적으로 어떤 대상과 교감하는 순간 다가오는 것들이라고 할까.


2

마이크와 액션 캠을 장만했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기도 했지만, 콘텐츠를 보강하기 위해 지출했다. 적잖은 돈을 쓰기 위해 몇 개월 전부터 검색에 돌입했다. 결정과 번복 사이를 오가면서도 나는 미니멀리즘 때문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감이 찾아와, 나는 그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타당한 이유들을 늘어놓아야 했다. 하지만 마땅한 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욕심이거나 욕심을 포장한 자기만족이거나 완벽한 허세일 지도.


어쨌든 나는 마이크와 액션 캠이 내 콘텐츠를 빛내줄 거라 기대한다. 망상이더라도 또는 근거 없는 희망에 불과할지라도. 프로페셔널한 사람의 조건은 무엇일까. 나는 프로페셔널한 사람을 지향하지만,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마저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도배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공대생의 심야서재가 영원히 아마추어이길 바란다. 어쩌면 이율배반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나는 꽤 날카롭고 샤프한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하니까. 그런 이미지는 내가 표방하는 것과 정반대라, 가끔 의도치 않은 감정의 편차를 겪게 하기도 하지만.


겉으로는 허술한 사람이지만 내면이 단단한 사람, 겉으로 전문가 행세는 하지 못하지만, 속으로는 꽉 찬 사람으로 인정되고 싶다고 할까. 그래서 나를 알게 된 사람이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차츰 내 속에 숨겨진 생각의 스펙트럼이 드넓다는 걸 헤아려주길 바라는 마음, 그런 부끄러운 마음도 이 공간을 통하여 풀어본다.


3

트레이더스에서 오래간만에 바지 한 번을 구매했다. 29 사이즈가 내 몸에 적합하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그릇의 형태를 그려본다. 그러니까 내 그릇은 지금 29 사이즈인 셈이다. 나는 29 사이즈에 맞게 내 몸을 재단하고 끼워 맞춘다. 그러나 한때 나는 32 사이즈, 나아가 34 사이즈가 나에게 적당한 그릇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편하고 넉넉한 공간에서만 자유를 얻는다고 믿었다. 나는 늘어졌고 더 게을러졌다.


어느 날, 나는 과거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어느 시점인지도 불확실했다. 단지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 왠지 지금쯤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어쩌면 하루키를 잠시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아침마다 뛴다는 이야기, 글 쓰는 일을 위해 그렇게 자신을 단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처럼, 아니 그가 되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나는 하루키를 따라 변해야 할 것 같았다.


그날부터 먹는 일을 줄이고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긴 호흡이 필요했다. 단기간의 처방은 또 무효화가 될 것이 뻔했으니까. 몇 번의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다, 나는 29 사이즈라는 그릇에게 나를 맞췄다. 몸은 약간 불편을 하소연했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나는 새로운 그릇에 적응을 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 29 사이즈에 싫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러면 다시 28 사이즈로 옮겨갈 것이다. 아마도 또 잠시 성공했다, 길게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이려 애써야 한다. 오늘 29 사이즈의 글을 쓰고 나는 30 사이즈만큼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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