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r 20. 2020

애쓰지 않아도 무엇이든 어설프게나마 비워 나가리라

천천히 흐름대로


1

10년 전, 강요로 108배를 시작했다. "집중을 위해서라면 108배가 꼭 필요하다"라며 대표는 추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나에게 그 단어는 억압으로 들렸다. 말하자면 그는 골 때리는 인물이었다. 업무와 108배는 대체 어떤 상관관계를 보이는가. 천재는 생각도 행동도 독특한 패턴을 보인다더니, 그는 예외 없이 천재적인 행동 특성을 보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매트가 사무실에 배달된 다음 날, 기계적인 108배가 시작됐다. 그것은 땀 흘리기 싫어하는 나에게 운동에 지나지 않았다. 대표는 마음의 번뇌를 버리라고 부처님처럼 말했다. 그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이해하다니, 그는 어쩌면 부처님을 능가하는 인물이라고 한동안 착각했던 것 같다. 금강경, 천수경을 줄줄 외우는 그의 이론과 깊이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갔다. 그래, 믿음이 그토록 두터운 사람이라면, 내가 버리지 못했던 미움과 원망의 불씨를 깨끗하게 불살라줄지도 모른다는 희망까지 품었으니까.


108배는 대략 20분이 소요됐다. 일주일이 넘었지만 적응은 되지 않았다. 매트에 무릎 자국이 생기고 숫자를 머릿속에 되뇌지 않을 정도로 108배 전문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잡념은 나를 대신하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스러운 인물들이 하나씩 커다란 강물처럼 범람했다. 108배를 시작한 대표, 갑질 대마왕 A 교수. 더 짜증 나는 것은 과거의 잊은 기억이 좀비처럼 깨어나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생각이 떠나야 정상이라는데, 왜 나는 더 과거의 생각들이 되살아났던 걸까. 나는 불교와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건방진 생각, 떠나야겠다는 생각, 버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모든 거추장스러운 생각들과 동행해야겠다는 교만한 생각, 그러니까 생각들은 분리될 수 없는, 나에게 일종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버려야 한다는 명제는 날 더욱 억압했다. 숙제가 하나 더 얹힌 것이었다. 108배에 가까울수록 어깨가 더 무거워진 나머지, 나는 등에 부처님을 엎고 절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108배는 1년이 넘도록 진행됐다. 물론 드라마틱한 사건도 획기적인 변화도 일어나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지혜가 없는 인간이었으므로 나약하고 어리석고 버리지 못해 무엇이든 안고 사는 사람으로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삶을 후회하진 않는다. 억지로 비워야 한다는 첫 번째 다짐도, 절대 생각은 사라질 수 없다는 속마음을 들켜버린 두 번째 후회도. 심지어는 상처를 주고, 상처받아 쓰라린 마음조차 모두 내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냥 내가 생겨먹은 대로 살아가면 그뿐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도록 신이 프로그램한 걸 어떡하랴.


어쨌든 우린 애쓰지 않아도 무엇이든 어설프게나마 비워 나가긴 하더라. 그토록 집착하던 번뇌, 잡스러운 생각, 미움, 원망의 감정도 어느 날 최후를 맞은 생선의 비늘처럼 뚝뚝 떨어져 나갔으니까. 결국 인생이란 순리에 따르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논리 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다. 돌풍같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미풍같이 사라지면 좋겠다. 내 마음은 스크린이 아니니 그 속에 이모티콘이든 아이콘이든 비칠 수는 없겠다. 하지만 내 마음이 호수처럼 한없이 맑아서 누구든 잠시 쉬어갔으면 하는 바람. 그 바람이 슬며시 불면, 흐름에 따라 끌려가다가도 바람 덕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 조급할 필요는 없겠다.



2

필사 - 신현림 시인의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줘, 사랑해"



나의 지난날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용서해 줘,라는 말은 그만하는 사람이 될게"



3

내가 좋아하는 곡 멋대로 소개하기

Elton John -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https://www.youtube.com/watch?v=yYTOhFpiBDI



채팅방에선 공심재의 다양한 모임 소식과 할인 정보를 전해드립니다.

https://brunch.co.kr/@futurewave/800


매거진의 이전글 만료일을 넘길 풍광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