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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15. 2020

앞 모습과 뒷 모습

장면 에세이

한 사람의 뒷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퇴근 무렵 암사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던 참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발자국을 지워가며 나는 한동안 걷기만 한 터였다. 조금은 고단해졌을까. 남은 모든 힘을 소진할 무렵, 집은 언제나 그랬듯 가까운 곳에서 나타날 법이었다. 


그래, 집은 늘 편안하다. 내가 걸어온 길이만큼, 나는 꽤 피곤했으므로 기댈 곳이 필요했다. 포근하고 아늑하고 지친 몸 기댈 수 있는 지극히 평화로워 등만 기대도 스르륵 잠들 수 있는 그런 푹신한 공간. 나에겐 그저 1세제곱 미터의 공간만 있으면 그만일 뿐. 무엇이든 내가 걷는 동력이 되는 것이라면.


그런 집이 가까워질 무렵, 한 사람을 발견했다. 아니, 그 남자가 내 뒤에서 언뜻 나타나 다시 앞쪽으로 슬며시 지나갔으니, 나는 그 사람의 이동을 단순히 느낀 것과 비슷하기도 했다. 그 남자는 느리고도 부드럽게 흘러가는 가벼운 공기 같았다. 바람 덕분에 낙엽이 바닥을 스쳐, 다시 공중으로 부양하듯 그는 흐름에서 멀어지더니 자전거 몸체에서 몸을 기꺼이 분리했다. 그러곤 사람도 없는, 그러니까 자동차도 드나들지지 않는 적막한 도로 한가운데를 오직 다리의 의지만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듯 그는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피더니 자전거 손잡이를 두 손으로 붙들고, 신호등도 없는 도로 반대편을 향해.


그는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잘 지킬 법한 사람, 이를테면 코로나의 공포가 시든다 해도 마스크를 아침마다 얼굴에 감싸고 다니며 자신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할 사람. 버스가 도착하면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느긋하게 기다리며 타인에게 공간을 내어줄 사람, 누군가 실컷 아주 혼자 떠들어도 오래도록 묵묵하게 귀를 빌려줄 사람, 장례식장에서 상주에게 먼저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얼마나 아팠냐고 안아주며 물어볼 사람.


집이 가까워서 그랬을까. 마음도 발걸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 아마도 집이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남자 덕분에 도로도 횡단보도도 높이 솟은 아파트의 위용도 다정한 붉은색으로 물들어갔으니까. 내 마음도 그 남자의 마음도 그 순간엔 거의 하나로 물들었으니까. 우린 거의 한 사람이었으니까.


어제는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하여 오래 묵혀둔 책들을 반납하러 다녀왔다. 책 세 권은 물기를 가득 머금은 듯 무겁고 축축하기만 했다. 묵직한 것들을 한 손에 든 채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니 낯선 그림이 나타났다. 이름을 쓰고 체온을 재고 다시 손을 소독하는 일련의 수고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나는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 사람처럼 미심쩍은 마음으로 책들을 반납했다. 그리고 물물교환을 하듯 새 책들을 들고 나왔는데, 나는 마치 새 물건을 얻은 사람처럼 그것들을 깨끗하게 마음속으로 복사하고 싶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여자는 무언가를 슬쩍 지하철 통풍구에 올려두는 것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엉큼하게, 태연하게,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어떤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녀는 자신의 분신을 버려두더니,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내 앞을 스쳤다. 그녀가 지하철 통풍구 위에 올려둔 것은 간식거리 같은 것들 따위였다. 길쭉한 종이컵 위로 음식의 끄트머리가 살짝 보였으므로, 나는 그것이 그녀가 몇 초전에 즐기던 어떤 잔해(殘骸)일 거라고 굳은 확신을 남겼다.


그 순간 며칠 전 퇴근 시간에 마주쳤던 한 남자의 등이 교차됐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사람을 보려 했던 사람과 주변에 사람이 많았음에도 사람을 보지 않으려 했던 두 종류의 사람이 동시에.


우스웠던 것은 두 가지 일이 모두 붉은 석양이 도시를 끌어내리는 순간에 찾아왔다는 거다. 나는 두 가지 일 모두에 얼굴을 붉혔지만, 붉음의 농도도 밝기도 모두 개별적이었다는 사실. 낯설지만 친절한 배려, 익숙하지만 뻔뻔한 모순이 하루를 마감하려 했다는 사실.


매일은 언제나 다를 테고,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다른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겠지만 여전히 나는 어떤 장면에 낯설고 어떤 장면에 태연하게 익숙해지는 바람에, 그 어떠한 경계에도 머물기 어렵겠다는 불친절한 결론을 맺기도 하는, 그런 경계 없는 인간으로 살아간다.


어제 본 사람은 무섭고 두려우며 감정에서 책임감이 소거되어 버린 사람이었지만, 세상엔 그런 사람보다 바다를 볼 때 우리가 저절로 감탄사를 뱉어내는 것처럼, 세상엔 드넓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제의 불편한 감정은 그제의 배려로 가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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