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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20. 2020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단상 에세이

여기까지입니다. 제 역량이 미칠 곳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지금 여기 바로 이곳.


며칠 전 확인해보니 어느덧 모임이 스무 개를 넘겼습니다. 문제는 단순하게 참여하는 모임이 아니라 전부 제가 기획하고 만들었다는 겁니다. 누가 보면 '그걸 어떻게 다 해낼 수 있어?'라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판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무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전적으로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상식이 상식이 아닌 것이 되듯, 저에게도 상식이 아닌 것이 가끔 상식으로 돌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항상 그렇다면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이 맞겠지만요.


근데 더 이상의 확장은 고려하고 싶지 않아요. 이젠 덩치를 줄여야 할 시기가 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임들이 모여들면 커뮤니티로 확장할 수 있겠죠. 커뮤니티라는 이름은 모임보다 더 큰 개념으로 비치네요. 사람이 많이 모이고 더 많은 모임이 개설되는, 그러니까 수없이 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아주 커다란 문이어야만 감당이 가능한 공간으로 커뮤니티는 해석됩니다. 그런 모임을 더 많이, 더 숨 가쁘게 조성하는 것이 중요할지, 숫자보다는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더 안락하고 다정하며 자신이 더 소중하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모임을 가꿔나가는 게 맞을지, 저는 후자에 더 주목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속도만을 생각하고 달린 건 아닌지, 잠시 여백을 생각하고 있어요.


모임은 운영자의 모습, 정체성 나아가 철학을 보고 찾아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운영자가 모임에서 멀어지고 소홀히 운영하며 관리를 타인에게 맡긴다, 과연 그런 생각이 커뮤니티를 존속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이유는 저를 외연에서 멀리 떨어뜨리게 유도합니다.


그래서 규모의 경제, 규모로 정의하는 외연의 이미지로 마음이 각인되는 바람에, 소박하지만 소중한 것을 자꾸만 흘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직장인으로 남을 만한 충분한 논리를 설명합니다. 직장은 일거리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고맙고 감사한 공간입니다. 물론 가끔은 퇴사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기에, 다시 저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퇴사라는 아주 막연하고 망망대해 같은, 말하자면 깊이와 너비를 마음대로 상상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죠. 직장은 그런 상상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제공합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마땅히 직장인으로서의 할 일을 낮 동안 해냅니다. 그래야 모임이든 커뮤니티이든 즐겁고 재미있게 꾸려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람은 살다 보면 변해갑니다. 나도 모르게 처음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말죠. 돌아가고 싶어도 어떤 시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단 1초의 시간이라도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시간은 이미 계속 달아나는 중이니까요. 시간도 변해가는데 내 마음이라고 온전하겠습니까? 시간에 같이 묻어가는 것이 편하겠죠. 그럼에도 그 편한 시간의 선상 위에 강제로 올라타서 시간의 흐름을 조망하는 일, 그런 자격은 시간을 인지하는 사람에게만 또는 시간에게 겸손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일입니다.


저는 실수든 고의든 놓쳐버린 것들에게 여전히 후회와 연민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조금이라도 덜 놓치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래야 처음의 마음을 약간이라도 원복 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과거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과거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오늘도 기록에 집착 중이네요. 기록은 어쩌면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몰래 쓰다, 그 편지를 누군가에게 그만 들켜버리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기록이란 고독하면서도 수줍은 일이며, 가끔 일부러 들켜버리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앞으로 볼륨, 외연, 확장, 이런 단어를 더 기피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결국 그런 볼륨의 가치에 휘말리게 되면 저도 머지않아 불투명한 색깔로, 사람보다는 돈의 맛에 취하는, 그렇고 그런 달아빠진 인간이 되고 말 테니까요. 그런 사람이 어찌 글을 쓰겠으며 글로서 사람에게 울림을 전달할 수 있겠어요. 그리하여 제 마음이 포괄할 수 있는 만큼만 안아보겠습니다. 더는 흘리지 않도록 말이지요.


저는 여기까지만 만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지금 여기 바로 이곳까지입니다.



제 모임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로(수줍게)

https://cafe.naver.com/wordmas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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