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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28. 2020

기쁨과 슬픔과 함께 범람하는 일

좋아하다 :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


나에게 있어서 좋아한다는 말은 숨김입니다. 숨길수록 더 고결하게 빛난다고 믿기에 나는 그 어렴풋한 감정을 자주 장롱 속에 숨겨두는 편입니다. 혼자서 오래도록 익어가도록 말이죠. 좋아한다는 말엔 고등어가 바다 바깥에서 생을 오래 참지 못하는 것처럼 유효기간이 짧지도 모를 어떤 생기발랄한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소금에 절인 고등어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러니까 좋아한다는 말은 오직 내 심연 속에서만 숨을 쉬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부끄럽게 그리고 들키지 않게 다가서야 합니다. 그 거리란 건 잴 수 없지만, 감각할 수는 있습니다. 나는 가까이 서 있기도 하지만 때로 지극히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손이 닿지 못하는 그런 곳에서도 나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피곤하고 가끔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 될 테죠. 그만큼 좋아한다는 건 삶을 무겁게 만드는 일이 되니까요. 마음을 들켜버린다는 건, 그 사람에게 내 속살을 보여주는 것과 같으니까요.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멀리서 지켜보는 일이 서로에게 유익할지도요.


우린 다른 세상에서 머무는 존재입니다. 당신의 세상, 나의 세상은 언제나 개별적으로 차려져 있어요. 각자의 세상에서  담담하게 책장을 넘기고 본래의 모습으로 읽어 내려갑니다. 그러니 우리의 세계는 원래의 형상으로 다음 세대까지 전해져야 합니다. 아름답게 가꿔나가야 합니다.



만약 좋아한다는 말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나는 조금 싱거워질 것 같습니다. 나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너무나 버거워질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것도 감출 수 없게 되니, 나아가자면 너무 솔직해져 버리니까 김이 새어 버리고 맙니다. 탱탱하던 풍선에서 바람이 슬슬 빠져나가듯 내 안의 공기도 자꾸만 사라질 겁니다. 나는 그것을 목격할 수 없어서 늘 긴장에 갇혀 있습니다. 조르바가 말한 것처럼 삶은 진정 감옥인가 봅니다. 어설프게 뒷걸음질을 쳐도 갈 곳은 없지만요. 난 내 마음을 차라리 더 깊이 가둡니다. 영원히 탈출할 수 없는 단단한 곳에 감정을 묶어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장면을 여전히 담으려 합니다. 당신의 일기를, 당신이 읽던 마지막 책장을, 당신이 걸어가던 조용한 숲길을, 당신의 24시간을 완벽히 담아내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모든 노력 속에서도 어떤 것들, 소중하지만 미쳐 담아내지 못한 나머지들이 온기 없이 스르르 흘러내립니다, 굳어갑니다. 생기 없는 화석처럼 단단하게, 그렇지만 점점 세상과 함께 퇴화되어 갑니다.


때론 너무 늦기도 합니다. 막차를 놓쳐버린 사람처럼 플랫폼에 서서 뒷모습을 감당하는 것과 당신을 좋아하는 일은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말하자면 나는 늘 지각만 하는 사람이기에, 어쩌면 좋아한다는 걸 고백하는 것조차 완벽한 사치가 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다시 관망만 합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당신을 옆에서 숨죽이고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남길 말들은 늘 앞서가고 또 일을 저지르고 수습을 바랄 테지만, 감정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혼자서 날뛰겠지만… 나는 여전히 말없이, 비록 나의 존재를 당신이 알지 못할지라도. 나는 당신에게 나지막하게 말하겠습니다. 세상에 떠다니는 기쁨과 슬픔들과 함께 범람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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