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17. 2020

스치는 생각들을 묶어 두는 일

낯설고도 이질적인 대화들

출근하지 않아도 문제없는 월요일을 앞둔 밤. 바깥세상이 그리워 길을 열었다. 카페를 찾아 동네 구석구석을 헤매다 명일역 부근 스타벅스까지 한참을 걸었다. 카페에 들어서니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조용한 것도 아닌 미묘한 소리가 일렁거렸다. 일요일 밤이 전하는 약간은 무겁고도 야속한 기운, 가라앉은 빛들이 그곳에 가득했다.


묵직한 노트북 가방을 한 번 더 어깨에 들쳐 매고 에스프레소 프라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정신을 돌게 하는 단맛, 진한 마호가니 색 가구와 잘 어울리는 빛깔이 커피잔 위로 넘쳐흘렀다. 잰걸음으로 2층을 향했다. 빈자리를 찾을 요량이었다. 콘센트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하지만 그런 배려가 2층에 있을 리 만무했다. 콘센트의 부재는 물론 아쉽지만 대신 선물 같은 고요함이 가득할지도.


이 공간에 나는 몇 시간 동안 앉아있어도 괜찮을까. 샷 추가한 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 한 잔이라면, 적어도 3시간은 문제없을까? 그 적당한 시간은 누가 계산해주는 걸까? 쓸데없는 망상에 얽매이다 빈자리부터 찾아 나섰다. 명당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차선책으로 허리를 받칠 만한 자리를 발견하고 노트북을 펼쳤다. 어댑터, 마우스 따위를 꺼내지 않고 노트북 본체. 괜히 몸이 더 가벼워진 기분.


읽다만, <마흔에 관하여>를 테이블 왼쪽 위에 올려놓고 노트북으로 글벗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읽었을까? 잠시 집중과 격리되고 싶었다. 난 쉬기 위해 이곳을 찾은 걸까? 일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걸까? 목적은 중요하지 않을 테지. 무엇이든 할 거리가 있다는 게 소중했으니까. 가끔은 낯선 공간이 글을 쓰게끔 도와주기도 하니까. 배터리만으로 얼마간 버티려면 밝기를 최대한 낮출 필요가 있겠어,라고 나직이 속삭이고 밝기를 30% 이하로 줄였다. 눈이 아픈 것보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더 소중했으니까.


빨대를 찾았다. 종이 껍질을 벗기니 조금 더 두터운 종이가 튀어나왔다. 그래, 플라스틱 빨대에 고통당하는 바다거북을 생각한다면 진즉 없애야 했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프라푸치노를 한 모금 마셨다. 시원하게 가슴이 뚫리는 것이 오늘은 글발이 살아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연 웅성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날아들었다.


“뭐 한 잔 시켜야 하나?”

“시키긴 뭘 시켜. 배불러 죽겠구먼. 저기 빈자리 있네. 빨리 가서 앉자고”


낯설고도 이질적인 대화가 산소를 빨아들였다. 계산대 없는 2층에 올라와서 속삭일 건 아니었다. 난 대체 뭐란 말인가. 난 배가 부르지 않았으니 커피를 주문한 걸까? 지금까지 식사 후 마신 커피의 총량은 대체 얼마나 된단 말인가.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벌였던 말인가. 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으나 영감을 얻으려고, 글 한편을 완성시키기 위해 이 공간을 돈 주고 빌렸다. 그런데 왜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을까?


귀가 예민해진 나는 그들의 대화를 공짜로 들어야 했지만 그들처럼 도둑의 신분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난 그곳에서 떳떳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다 서늘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 공간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저 중년들 외에 더 있는 건 아니겠지? 시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렸다. 노트북을 열어놓은 옆자리 여학생도, 멀리 보이는 아저씨 3명도 아까부터 꼼수를 부리는 중이었다.


2018년 미국 스타벅스에서는 커피 주문을 하지 않은 손님을 신고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매니저가 신고한 손님 두 명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커피 주문 없이 자리만 차지한 무리들도 신고되어야 마땅할까? 2시간마다 커피 한 잔을 꼬박 시키면서도 미안함을 느끼는 나는 참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라는 생각. 매너가 사라진 사람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몇 개 남지 않은 콘센트마저 모두 사라지고, 남은 자리까지 더 불편한 물건으로 바뀌겠구나, 라는 불편한 생각.


카페에서 우리는 고객으로서 귀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그것을 우리는 당연한 권리라 생각한다. 고객으로서 누리는 권리는 우리가 받는 서비스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여기서 무임승차는 곤란하다. 누군가 공간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해당되니까.


속이 유난히 울렁거린 나머지 남은 프라푸치노를 한숨에 들이켰다. 글을 써야 하는데, 생각만 한 가득, 물론 이런 상황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집요함이 머릿속에서 이글거렸다. 나는 메모지를 꺼내고 뒤에서 스치는 소리들을 하나씩 붙잡았다. 요긴할지 그렇지 않을지 내일이 되면 알 것 같았다.




글쓰기 & 독서에 관심 있으신 분 초청합니다.

https://brunch.co.kr/@futurewave/952


공대생의 심야서재 카페

https://cafe.naver.com/wordmastre


이전 19화 팽팽한 마음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