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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l 20. 2020

팽팽한 마음에게

일상의 사소한 생각

월요일이라서 그랬을까? 어딜 가든 사람이 그득했지만 버스는 유달리 밀도가 높았다. 버스 앞쪽에서는 덩치 큰 남자의 까만 뒤통수가 눈앞에 바로 밀착됐고 뒤에서는 또 다른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뜨겁게 밀려들었다. 마스크가 내 얼굴을 보드랍게 감싸줬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뿜어대는 공기 속에서 과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훨훨 풀려 다니는 공기 속에 과연 코로나 바이러스가 단 한 방울이라도 섞이지 않았을까.


내 마음은 난데없이 팽팽해졌다. 느슨하게 출렁거리던 버스 손잡이를 더 강하게 붙든 것은 지탱하려는 의도보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더 컸다. 그런 주의 깊은 행동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조심스러움이 내 신상을 어떻게 보호해줄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눈 앞은 점점 더 까매졌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긴장을 멈추지 않는다 해도 그 마음과 상관없이 바이러스는 내 안위를 계속 위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팽해지려는 마음은 쉽게 풀리곤 했다. 나이란 게 결국 내 의도와는 달리 모든 걸 느슨하게 풀어버렸으니까. 아무리 팽팽하게 유지하려고 애써봤자, 나이 앞에서 나는 결국 무력해지고 말 테니까. 억지로 붙잡으려고 힘을 써봤자, 결국 난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게 자연의 섭리일 테니. 그러니까 팽팽함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는 숭고하지만,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도록 인생은 비극으로 서사하게 될지도.



이렇게 글을 쓰며 나는 지나가버린 팽팽한 날들을 회상했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말하자면 시종일관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부릅뜨고 다니던 시절엔 특별하게 과시하지 않아도 난 탱탱함을 유지했다. 그 힘은 스스로를 뽐내기 위해, 영원할 것 같던 젊음을 세상으로 발산하기만 했으니까. 


이를테면 어떤 시절의 작은 나는 줄다리기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밧줄을 꽉 잡은 두 손의 모양과 엇비슷했다. 나는 밧줄을 세게 움켜쥐고 무엇이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겠다는 기세로,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태도로 세상을 대했다. 때로는 화를 냈으며 가끔은 투덜거리며 불만을 퍼붓기도 했다. 버팅기다, 앞쪽으로 무너질라치면 나는 밧줄을 더 세게 쥐고 허벅지에 모든 부담을 넘겨줬다, 그럼에도 안 된다면 차라리 뒤로 넘어지자고. 이것은 나만 사는 방식의 싸움이었다. 차라리 앞으로 넘어지는 거라면, 그것이 누군가에게 굴복하는 일이라면 뒤로 자빠지고 말겠노라고.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쓰러져 끌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앞으로, 그러니까 무릎을 꿇지는 않겠다는 신념으로.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나도 모르게 힘을 잃어갈수록 세상은 힘만으로 버틸 수 없는 구조라는 걸 알았다. 세상을 지탱하는 힘의 원리란, 힘을 얼마나 세게 낼 것이냐가 관건이 아닌 얼마나 힘을 뺄 것이냐에 따라 더 분명하게 규명된다는 사실, 그걸 깨닫기 위해 나는 50년 이상의 세월을 흘려보내야 했다. 하지만 배우는 것과 실천한다는 건 여전히 멀다. 힘 놓는 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변함없다.


나는 바닥을 드러낸 빈 잔처럼 말끔하게 그리고 서서히 세력을 잃어갈 것이다. 오늘 아침 버스에서 잃어버린 젊음을 회복하겠다며, 손잡이를 강하게 붙들었던 어느 한순간처럼, 힘은 찰나에 불과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난 무엇이든 잃고 말겠지. 하지만 인생이 식상해진다고, 예전만큼 힘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인생은 그 자체로 건강하게 나를 기다리리라.


버스에서 나는 좌우로 흔들거렸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모양대로 자신의 힘만으로 고독하게 버티는 중이었다. 나는 위태롭게 버스 손잡이에 의탁한 채, 타자와 밀착된다는 사실이 불안한 나머지, 그러니까 타자가 보균할지도 모를 바이러스를 경계하며 팽팽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긴장과는 상관없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여도 나는 계속 안전할 수 있을지 확정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과 타협하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내 힘을 양보함으로써 균형을 찾아가고 싶었달까. 물론 균형은 힘이 답보되어야 유지될 수 있을 터. 버스의 위태로운 주행이든, 버스 안에 머물지도 모르는 바이러스의 존재이든, 세상엔 나를 위협할지도 모를, 잠재된 위험들이 언제나 존재할 테니까. 나는 흔들거리면서도 그냥 계속 갈 뿐이었다. 손잡이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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