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용도

형체 없는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시를 왜 쓰냐고 묻는 당신에게

입술이 헐어버릴 따름이어서

그 무게를 감당할 몫이 사라져 가고 없으니

형체 없이 살아갈 뿐이라고 나는

자신 없는 소리로 웃었다


몇 십 개의 목적 없는 기다림

몇 백 개의 자취 없는 슬픔

몇 천 개의 임자 없는 절망으로

무음이 잠긴 서랍 속으로

기약 없이 보관될 뿐이라고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서 울었다


시인으로 살기에는

모자라기만 한 내 생의 값어치들

밤을 불사를 용기도 없고

근본도 없는 나는

그렇다고 어떤 경계에

닿아본 기회도 엮지 못했으며

영영 닿을 수도 없어서

더 먼 경계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시인의 하루는

하늘로 하늘로 끝없이 날아가는

날갯짓, 과한 흔들림 같다고, 나는

음이 없는 멜로디로 서성일 뿐이었다


세상에 살던 슬픔이

아니 남쪽에서 살아가던 슬픔이

엄마 없이 태어난다면

봄은 바람처럼 문 앞으로 다가와

벚꽃에게 지난 계절의 소식을 묻겠지


앞 마당에 멈춰서 개나리꽃에게

반갑게 안부를 배달하고

내일은 목련처럼 하얗게 태어나 볼까

몸을 깨끗하게 단정하다,

그러다가도 영영 바래질 거라고

당신은 할머니처럼 슬프게 웃었다


당신은 그러니까

오직 미소로만

몽환적인 소리로만

가닿을 수 있는

반대편의 겨울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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