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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Apr 01. 2020

카레 먹기 싫어요

어릴 적 카레는 왜 그렇게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점심 뭐 먹지? 우리 카레 먹을래?

"싫어!!!"

"으응?? 왜? 하하하 "


3~4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고 있던 젊은 아빠는 아이에게 카레를 먹자고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아이의 너무도 당당하고 우렁찬 싫다는 대답. 젊은 아빠는 조금은 당황한 듯한 되물음과 함께 실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두 부자(父子)는 유유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이야 각종 레토르트 제품들이 넘쳐나는 세상인 덕분에 카레도 너무나도 쉽게 다양한 종류의 카레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카레는 먹기는 한편으론 쉬운 일이기도 혹은 어려운 일이기도 했었다.


외식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거의 대부분의 끼니는 집에서 해결했다. 게다가 돈 없는 어린 시절이니 당연히 집 말고 어디 가서 뭐 얼마나 사 먹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집 반찬으로 카레가 등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매우 널찍하고 큰 냄비 속에 한가득 용암이라도 된 듯 진득한 표면으로 기포를 내뿜어대던 카레의 모습은 그 시절 색다른 이국 음식을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주는 그런 음식이었다.  


특별히 다른 반찬은 필요하지 않았다. 따뜻한 밥 한 공기에 카레 한, 두 국자를 퍼붓고 나면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고 거기에 간단히 김치만 추가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짜장엔 단무지라고 했던가 하지만 카레에는 김치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 모든 게 완벽한 것은 없었다. 이 카레에도 문제는 있었는데 카레의 양이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줄어들어 그 바닥을 내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루, 이틀 길게는 3~4일 매일 같은 반찬으로 카레가 밥상 위에 등장하였다. 왜 그렇게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요즘엔 예전처럼 그렇게 많은 양의 카레를 만들어내는 가정들이 많진 않겠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다. 길에서 너무도 당당한 목소리로 카레를 거부하던 그 아이는 그동안 카레를 많이 먹어온 탓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입맛에 맞지 않아서였을까?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덕분에 어릴 적 한솥 가득한 카레가 떠올려 주었다.


이제는 한 그릇에 부으면 끝나버리는 3분 카레만 먹고 있지만 냄비 가득 끓여진 진득한 카레를 신김치와 함께 먹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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