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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Apr 04. 2020

퇴근길에 너를 탓하다

신발은 아무 죄가 없어요, 너님 발이 부은 거지

"어라? 발이 왜 이렇게 끼는 것 같지?"

어느 날 밤 퇴근길에 발걸음을 걷고 있던 중 문득 발이 매우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전에 신던 신발이 편하고 맘에 들어서 똑같은 모델로 다시 구입해서 신고 다니던 신발이었는데 그날따라 발이 불편하게 느껴지던 건 무슨 이유였을까.

"같은 종류인데도 구매한 기간에 따라 차이가 좀 나는 건가?"

알 수 없는 호기심과 발이 불편하다는 생각에 이런 궁금증을 품은 의심의 눈초리로 신발을 바라보며 종종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며칠 후 어느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내려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건 여기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모두가 한데 엉켜 계단을 오르고 있던 그곳, 멀찍이 앞서 오르던 무리와 떨어져 걷고 있던 발걸음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신발이 여유롭네?"

같은 곳을 걷고 있다 문득 들게 된 생각, 지난밤 퇴근길에 신었던 신발과 동일한 신발인데 그 퇴근길에 의심의 눈초리로 내려다보던 신발을 신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지만 발이 끼인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여유롭다는 느낌만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공간 하지만 다른 시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니다, 그 시간이라는 것이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왔었다.


"오래 걷거나 저녁에는 발이 부을 수 있으니까 너무 딱 맞는 신발을 고르시면 불편할 수 있어요"

신발을 사러 가면 매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혹은 어릴 적 신발을 살 때면 늘 딱 맞는 신발을 고르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신발이 불편하게만 느껴지던 그날 저녁에는 하루 종일 걷고, 일하느라 부어있었던 발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동안 편하게 신고 다녔던 애꿎은 신발 탓만 하면서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 같은 공간을 걷고 있자니 신발에 여유도 느껴지고 불편함이 없었으니 이 얼마나 무지한 상황이었던가.


상황은 따라 느끼는 감정은 늘 변화하게 되어있다. 물론 정말 그런 상황이 변화하여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평소와는 다르지 않거나 혹은 특별한 의도가 없이 나를 대하는데 본인의 기분에 따라서 그걸 좋게 받아들이 수도 혹은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감정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상황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와 함께 붙어있는 신체의 변화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신발 탓만 하던 중에 말도 못 하는 신발은 그 상황에서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런 의심의 대상이 물건이나 무생물이 아닌 사람에게 향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로 인해 억울한 일을 겪게 되는 누군가가 생기지 않도록, 좀 더 객관적이고 배려하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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