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잘 다녀와!!!"
"응, 좋은 하루 보내고 저녁에 보자!"
매일 아침 현관문을 나서는 K의 손에 도시락을 들려주며 배웅을 한다.
웃으며 인사하는 K의 모습에 고등학교 시절 그의 앳된 얼굴이 겹치며, 문득 10년간 부부로 함께 지낸 이 남자가 낯설게 느껴진다.
'아, 이 남자가 그 아이였지!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피식 웃음이 나는 순간이다.
우리는 고등학교때 처음 만나 친구로 10년을 지내다 짧은 연애를 마치고 결혼하여 10년간 살고 있다. 20년 전 그 아이가 이 남자구나! 어린 시절 그 친구가 20년 뒤에 나와 한 집에 함께 살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
1999년 11월, 어느 추운 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남자 고등학생 7명과 여자 고등학생 7명이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당시 나는 여고 2학년, K는 근처 남고 2학년이었는데 우리는 두 학교의 연합 봉사 동아리에 가입하여 멤버들간에 인사 차 처음 밥을 먹는 자리였다. 여고에 다니며 남자에 대한 환상이 극에 달했던 그 때, K의 첫 인상은 둥글둥글 착한 곰돌이 같았다.
본격적인 동아리 활동은 수능을 마친 이후에 시작했기 때문에 두 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정확히 1년 뒤, 우리의 수능이 끝난 다음이었다. 늘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K와 단 둘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날 모임 중간에 술을 깰 겸 같이 밤 길을 산책하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 좋았다.
동아리 친구들 대부분이 같은 지역으로 대학을 가게 되었고, K와는 지하철 역을 사이에 둔 가까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으로 혼자 살며 외로울만도 했는데, 동아리 친구들이 있어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대학 생활을 했다. 주말이면 한강에 모여 맥주를 마시고 각자 학교에 놀러가보기도 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서다 우연히 K와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보니 그의 옆에는 귀여운 친구가 함께였다.
"여자친구 생겼구나!"
수줍은 듯 씨익 웃는 K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지금은 남편이 된 그에게 이 때의 일을 얘기해주면 기억이 안난다며 둘러대곤 한다. 정말,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앞으로 쓸 이야기는 10년간의 친구 사이를 정리하고 연애를 시작하던 그 시절 우리의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이제는 결혼을 하고 10년을 살며 우리를 닮은 아이가 둘이나 생겼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원래는 친구사이였다는 얘기를 해 주면 두 눈을 반짝이며 재미있게 듣는다. 이미 10년도 더 된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기록으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