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아이와 함께 한 3년간의 도시농부 활동
2016년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나는 소위 말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대학 졸업 이후 줄곧 직장생활을 해오던 터라 전업주부가 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는데, 온전히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도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일 년 가량을 평범한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보니 몇 년 전 주말농장을 하며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르며, 다시 농사를 지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 첫 아이는 일곱 살, 둘째 아이는 생후 10개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하다가, 집 근처에서 <도시농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도시농부 활동이 나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도시농부에 대한 소개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겠다.
<도시농부>는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밭에서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농사 모임이다. 다양한 연령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도심 속 밭에서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짓는 것을 주 활동으로 한다. 토종 종자 보존을 위해 토종 종자를 기르고 채종 한다. 집에서 생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밭 한 켠에 거름더미를 만들어 퇴비로 사용하며, 생태순환적인 삶을 실천하려 노력한다.
처음 도시농부와 만나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아직 꽃샘추위가 이어지던 2017년 3월 초, 아기띠에 10개월 된 아기를 안은 채로 밭에 나갔더니 도시농부 회원들이 밭에 오줌 액비를 뿌리고 있었다. 코 끝을 찌르던 그 강렬한 냄새가 아직도 코 끝에 맴도는 듯하다. 아기를 안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바라만 보다가, 도시농부의 활동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보는 역할을 하겠다고 자원했다.
그날 이후,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아기를 안고 밭으로 향했다.
봄이면 밭에서 나는 냉이, 달래, 민들레, 지칭개, 봄동, 큰 개불알풀 등을 뜯어 부침개도 먹고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여름에는 무서운 기세로 자라나는 풀을 베느라 바빴고, 일 하다 말고 뽕나무 가득 열린 오디를 따먹느라 입과 손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밭에 나는 애플민트를 뜯어 상큼한 모히또를 타 먹는 재미도 좋았다. 가을에는 배추에 붙은 나비 애벌레를 잡느라 힘겨웠지만, 아이와 함께 메뚜기와 잠자리를 잡으며 즐거웠다. 겨울 농한기에는 도시농부 회원들이 함께 모여 떡을 만들어 먹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농사 책을 함께 읽어보며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텃밭에서 식탁으로, 밭에서 해 먹는 요리
도시농부는 매주 밭 한켠에서 요리를 해 먹었다. 도시농부 밭은 수도 시설이 없는 곳이라 요리를 준비하려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집에서 바리바리 싸온 물과 버너, 각종 식기류를 펼쳐놓고 흙 위에서 요리를 하는 그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갓 뜯은 달래를 간장에 넣고 달래 간장 비빔밥을 해 먹고, 자연 발아한 질경이를 뜯어 질경이 밥을 해먹기도 했다. 감자를 수확한 날에는 감자를 쪄 호호 불어가며 먹었고, 마늘을 수확한 날에는 마늘 잔뜩 넣은 볶음밥을 해 먹었다.
매주 도심 속 밭으로 소풍을 나와, 밭 향기 가득 품은 풍성한 밥상 앞에 둘러앉아 평화로운 점심 식사를 즐기곤 했다. 도시농부 활동을 풍성하게 해 준 일등공신이 아니었나 싶다.
퇴비 만들기
한 주간 집에서 모아두었던 음식물 찌꺼기와 쌀뜨물, 오줌을 들고 밭으로 모였다. 음식물 찌꺼기와 오줌은 거름더미에 넣어 낙엽으로 덮어주고, 쌀뜨물은 메마른 밭에 뿌려주었다.
음식물 찌꺼기는 버려지면 골칫거리이지만 퇴비로 만들어 활용하면 훌륭한 거름이 된다. 몇 달 동안 잘 발효시킨 퇴비는 그 온도가 60도 이상으로 오르고 최고 70도 이상이 되기도 한다.
퇴비를 뒤집어 줄 때 보니,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후끈한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배추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직접 만든 퇴비를 밭에 뿌려주었는데, 포실포실한 감촉과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음식물 찌꺼기로 만든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음식물 찌꺼기로 퇴비를 만드는 것은 도시농부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실천해 본 방법이었는데, 도심 곳곳에 이러한 퇴비더미가 많아진다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 농사지어 김장 만들기
텃밭 농사는 크게 봄 농사와 가을 농사로 나눌 수 있겠다. 가을 농사는 흔히 말하는 김장 채소들을 키우는 농사를 말한다.
도시농부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배추와 무를 길러 회원들과 함께 김장을 만드는 활동이었다. 모종을 심어 배추를 기르고, 씨앗을 심어 무를 길러냈다. 배추 잎 사이사이를 뒤적여가며 벌레를 잡아가며 애지중지 키웠다.
직접 재배한 배추와 무, 쪽파, 마늘 등을 수확하여 김장을 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뜨끈한 방에 둘러앉아 마늘을 까고 재료를 다듬고 배추를 절였다. 각종 재료들을 버무려 속재료를 만들어 김장김치를 만들고 김치통에 담아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니 마음이 그리 든든할 수가 없었다.
요즘 도심에서는 동네 사람들 간에 교류할 일이 많지 않은데, 도시농부 회원들과 김장을 함께 담그며 끈끈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었다.
텃밭에서 자란 아기, 꼬마농부 태오
우리 아이들은 텃밭을 놀이터처럼 드나들었다. 특히 둘째 아이는 생후 10개월부터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 밭에 다니며 농사를 짓고 있다 보니, 이제는 제법 삽질도 할 줄 알고, 씨앗이나 모종을 심는 손끝이 야무지다. 잡초와 작물을 구분할 줄 알고, 작물이 심긴 두둑 위를 함부로 밟거나 지나다니지 않는다. 말 그대로 꼬마농부가 되었다.
꼬마농부 태오는 밭에서 공벌레를 잡으며 놀거나 지렁이를 관찰하고, 메뚜기를 잡으며 놀기를 좋아한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쑥쑥 자라 열매 맺는 것을 이해한다. 여름 뽕나무에 새까맣게 열린 오디 열매를 열심히 따 먹기도 하고, 배추 모종을 심어 김치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아이다.
TV나 핸드폰을 만지며 키즈카페에서 노는 것이 익숙한 요즘, 아이들이 흙을 만지고 식물의 한살이를 알고 자연을 이해하며 자라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더불어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깨달으며 생태순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렇게 꼬박 3년이란 시간을 도시농부와 함께 하며,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우선, 농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매주 흙을 만지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이웃들과 나누며 삭막한 도심 속에서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 문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의 활동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도시농부만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자료가 된 것은 물론이고, 내가 쓴 글을 보고 도시농부의 활동에 함께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생겨났다.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2019년부터는 아이와 함께하는 도시농부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어떤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활동은 아니었지만, 도시농부 활동을 하면서 전에 없던 에너지와 열정이 생겨나는 것이 신기하다. 평범한 주부로 생활하던 나에게 도시농부 활동은 <농사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내년, 꼬마농부가 유치원에 가면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련 수업도 수강할 계획이고, 더불어 도시농업관리사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나와 내 가족, 더 나아가 우리 동네 이웃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준 도시농부 활동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농부 활동에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덧붙이기.
이 글은 2019년 농정원에서 주최한 도시농업실천후기공모전에 제출한 글로, 최우수상(농림축산식춤부 장관상)을 수상했답니다. 시상식에는 두 꼬마농부와 시어머니가 함께해주셨어요. 상 받으러 나간 저를 본 둘째 아이가 "우리 엄마예요!"하고 소리치는 덕에 웃음이 번졌지요!
덧붙이기 2.
도시농부는 여전히 활동 중이나 많은 상황이 변했습니다. 정성스레 가꾸던 밭은 현재 주차장으로 개발되었고, 새로운 밭에서 새로운 분들이 도시농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저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외출을 삼가는 중이라, 활동에 함께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늘 마음 가득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