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9월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숨 막히게 더웠는데 9월에 접어드니 아침저녁으로는 신기할 정도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래, 이제 가을이구나. 20대의 마지막 가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좀 이상했다.
9월엔 내 생일이 있었다. 생일이 뭐 별건가? 어릴 때부터 생일에 특별한 이벤트 없이 지나간 경우가 많아서인지,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나다. 그런데 지난주에 여름휴가로 제주도에 다녀왔다는 K는 공항 면세점에서 맛있는 양주를 사 왔다며, 주말에 만나 생일파티를 하자고 했다.
정말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20대의 마지막 생일을 K와 함께하게 될 줄이야.
생일파티 장소는 용산에 위치한 참치전문점이다.
K는 얼마 전에 친구들과 와 보았는데 참치가 꽤 괜찮았다며, 따끈한 사케도 함께 하자고 했다.
막걸리와 함께 내가 좋아하던 술이 사케인데, 이번에도 또 취향저격이다.
토요일 이른 저녁, 꽃 같이 예쁜 참치를 먹으며 K의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들었다.
시시콜콜한 그의 일상을 전해 듣는 것이 좋았다.
약간 그을린 얼굴로 신이 나 얘기하는 K를 보며, 언젠가 우리도 제주에 함께 갈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각자의 여름휴가를 보내느라 우리는 약 2주 만에 만났다.
서서히 마음을 키워 와서 그런지, 2주는 꽤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사케와 양주까지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시니, 몽롱하게 취기가 퍼졌다.
밖으로 나와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 보니 시청 앞 광장에 이르렀다.
용산에서 시청까지 걸었더니 다리가 꽤 아팠다.
좀 쉬었다 가자며, 잔디밭에 앉았다.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잔디밭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연인도, 가족도, 우리같은 어색한 사이도 더러 보였다.
어느덧 깜깜한 밤이 되었다.
알딸딸한 술기운을 빌어, 잔디밭 위에 나란히 누워 함께 별을 바라보았다.
K가 팔 베개를 해주었다.
선선한 가을바람 속에서, 목덜미에 닿은 K의 팔은 따뜻했다.
눈을 감았다.
이미 일찌감치 우정을 떠나 사랑에 도달했다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우리 이만 관계를 재정립해야하지 않겠니.
"우리, 사귈까?"
가을이 시작되던 그 밤 우리는 까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길을 걸을 때 더 이상 어색한 거리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유난히 따뜻한 K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이, 매 주 만날 약속을 정할 때 특별한 명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