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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Jan 03. 2021

전염병의 시대, ‘장티푸스 메리’를 생각한다

수전 캠벨 바톨레티의 『위험한 요리사 메리』를 읽고


갑은 을의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할 일을 대신 시킬만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갑의 일상은 굴러가지 않는다. 갑이 찾는 을은 눈치가 빨라야 하고, 자기 분수를 알아서 건방지지 않으며 입이 무거운 사람이다. 한마디로 갑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알아서 박박 기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긴 시간 혹독한 노동을 견딜 만큼 체력도 좋아야 한다.

20세기 초. 미국의 아일랜드 이민자 메리 맬런은 그런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메리는 요리사였다. 불편한 신발을 신고 하루 종일 서서 몇 십 인분의 요리를 만들고 치우는 일을 군소리 없이 해냈다. 하지만 메리에겐 그 자신도 모르는 비밀이 있었으니. 바로 몸속에 장티푸스균을 지니고 있는 건강보균자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에겐 병이 발현되지 않지만, 메리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장티푸스균에 노출되었다. 메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티푸스균의 숙주가 되어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자신이 무시무시한 장티푸스의 감염 매개자라는, 메리 자신에게도 충격적이고 믿기 힘든 사실은 보건 당국과 언론에 의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폭로되었다. 커다란 냄비에 죽음의 수프를 끓이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삽화가 신문 지면을 장식했고, 그렇게 메리는 마녀가 되었다. 

병원에 감금되기 전, 메리는 자신을 구인하려는 공중보건의와 경찰에 저항했다. 늘 고분고분했던 메리가 명령에 불복종하자 억압이 더욱 강해졌다. 그 과정에서 요리사로서 장점이었던 건장한 체격은 여자답지 못하다며 폄하되었고 인신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메리의 정당방위는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위험인물로 낙인찍히는 결과로 돌아왔다. 

장티푸스는 감염력이 높고 소아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으므로 메리 같은 건강보균자의 등장은 대중을 불안하게 했다. 특히나 상류층은 ‘더럽고 불결한’ 하층 계급 이 병을 옮기지나 않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던 상황에서 메리를 어떻게 처우해야 했을까? 몸속에 잠복해있는 장티푸스균을 없앨 방법은 없었다. 장티푸스균을 사멸시키는 강력한 항생제는 메리가 죽고 나서야 발명됐다. 당시 뉴욕시 보건 당국의 방침은 격리 아니면 방치였다. 메리는 전염병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노스브라더섬의 병원에 신속하게 격리되었다. ‘장티푸스 메리’가 사라지자 사회는 안전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뉴욕에는 확인된 건강보균자만 다섯 명이었고 확인되지 않은 인원이 얼마나 더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미국 전역의 장티푸스 건강보균자 50명 중 구금된 것은 메리뿐으로, 다른 건강보균자들은 여전히 일을 하고, 길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다녔다. 메리를 격리시켰다고 해서 장티푸스가 사라지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의 가족이 없는 가난한 비혼 여성, 그리고 상류층의 식탁을 책임지는 요리사가 그들의 목숨을 위협했다는 점이 메리를 유독 궁지에 몰았다. ‘장티푸스 메리’라는 멸칭이 붙은 것도, 실명으로 보도되고 구금된 것도 메리뿐이었다. 보건당국은 메리를 황색언론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았으며 공익을 위한 연구라는 이유로 메리를 상대로 채혈을 하고 여러 생동실험을 했다. 

메리만 잡으면 장티푸스가 사라지기라도 할 듯 보건당국은 힘없는 한 사람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무책임과 능력부족, 일관성 없는 정책 등을 가리기 위해 한 사람을 질병의 원흉으로 지목하여 대중의 시선을 돌린 것뿐이다. 대중의 관심이 사라지고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그 자리엔 짓밟힌 한 인간만이 남았다.

메리는 석방된 후 5년 만에 두 번째로 노스브라더 섬에 갇히게 되었을 때 체념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다시는 섬 밖을 나갈 수 없으리란 예감을 했던 것 같다. 그는 남은 생을 섬에서 보냈고 죽어서야 탈출할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건 외로움 속에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면이 강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의 곁에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병원의 연구실에서 조수로 일할 수 있었고, 누구에게도 병을 옮기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자신에게 편견을 갖지 않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다시는 요리사로 일할 수 없었지만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메리는 불행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 모진 운명에 지지 않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은 지금, 우리는 마스크 한 장에 의지한 채 각자도생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감추기에 마스크 한 장은 너무나도 얇아서, 서로에 대한 비난과 혐오는 단숨에 마스크를 뚫는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결국 팬데믹은 종식될 것이다. 그리고 재난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신체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도 막대한 피해와 후유증을 가져왔다.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재난 가운데에서도, 재난이 지나간 뒤에도 존엄을 지키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메리 맬런은 자신에게 닥친 재난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살아냈다. 절망과 모욕을 견디고 남은 생에서 의미를 길어 올렸다. 사람에게 상처받았지만 다시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 그런 메리의 삶이 우리에게 적지 않은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쓴이

나무늘보.

‘빨리빨리’라는 말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지만 모순되게도 조급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 이 글은 글맛 공방의 프로그램을 이용한 분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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