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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Jan 07. 2021

‘노후 파산’,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양로원에서 살던 노인들은 외계인들이 옮겨놓은 생명의 돌 ‘코쿤’이 들어 있는 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난 뒤 젊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인들의 욕심에 코쿤에 넣어졌던 외계인들이 힘을 잃고 죽어가게 된다. 노인들은 하는 수 없이 코쿤을 다시 바다에 넣어주고 외계인들은 자기들 별로 돌아간다. 외계인들은 감사의 뜻으로 양로원 노인들을 모두 데리고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그들의 세계로 간다. 이 이야기는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봤던 미국 영화 ‘코쿤’의 내용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인처럼 누구든지 젊음을 유지하며 장수를 누리고자 갈망한다. 하지만 재정도 넉넉지 못하고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마저 소실한 채로 늙는다면 어떠할까.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끌어 온 ‘단카이 세대(일본의 베이비 붐 세대)’는 예금이나 부동산 등을 보유함으로써 안정된 노후를 그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2014년 일본의 NHK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후 책으로 발간된 ‘노후파산’에서 그려졌던 그들의 실상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병원비 지출과 노후 개호(돌봄) 비용으로 인해 예금조차 바닥이 나서 파산하기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어떤 노인은 젊은 시절 직장 일에 매진하면서 착실하게 돈을 모았다. 여가 생활도 즐기면서 나름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결혼 시기를 노친 그는 독신으로 노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60대부터 연금 생활을 하면서 나름 안정된 삶을 누리지만 갑작스럽게 지병이 악화되면서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게 되었다. 예금은 점점 줄어들게 되고 돌봐줄 가족이 없는 관계로 파산에 이르러 결국 생활보호(기초수급대상자)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하여 자녀가 있는 경우도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노후에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자녀들조차 생업이 힘든 경우, 홀로 남겨진 채 빈곤한 삶을 살게 된다. 그들 또한 의료비와 생활비 부담으로 인해 파산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사례 대부분은 동경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도심부 외곽이나 지방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노후파산 문제의 근본적 요인은 연령별 인구구조의 역삼각형화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점점 늘어나는 고령 세대를 짊어질 현역 세대가 줄어들면서 이와 같은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다. 일본은 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30여년에 걸처 장기 불황에 빠진다. 재정난이 지속된 일본은 늘어나는 고령층 복지를 위한 세원을 마련하기 위해 2019년 소비세를 10%로 인상했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일본 정부는 최근 75세 이상 의료비 부담을 기존의 10%에서 20%로 인상 시키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결국 세원 부족으로 노인들의 의료비조차 인상시켜야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고령자 세대의 1/3에 해당하는 ‘단카이 세대’에게 부모를 모실 여력이 없는 자녀의 비중이 높다는 사실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특히 ‘단카이 세대’의 자녀 세대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고 격차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결국 ‘노후 파산’은 결코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젊은 세대와 중년 세대들도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젊은 세대들의 고용이 확보된다면 그들은 결혼을 주저하지 않고 자식을 낳고자 할 것이다. 인구 증가를 통해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 소비가 늘고 경제가 활성화되어 자연스럽게 노인을 위한 세원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 않은 부모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희생 끝에 맞이하는 노후가 순탄치 않다면 슬프지 않을 수 없다. ‘효(孝)’라는 한자는 자식이 노부모를 업고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노인을 짊어질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인구 패러다임의 변화를 우리 모두가 추구해 나가야 할 때이다. 노후 파산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변화를 볼 때 수 년 후 맞이하게 될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세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글쓴이

웨스트라이프. 

세상은 변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변함이 없다. 


* 이 글은 '글맛 공방'의 '서평 쓰기'를 수강한 분이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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