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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Jan 29. 2021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의 전쟁이었을까?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에 그려진 6.25의 실상

당신은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아마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혹은 자본주의)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은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던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았고 남한은 자본주의 세계의 최강자였던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쟁을 수행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인한 전쟁이었다는 규정에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민중이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민중의 입장에서도 과연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의 전쟁이었을까?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를 휘날리며〉는 그런 질문에 답하는 영화이다. 

주인공 이진태(장동건 분)는 벙어리인 어머니와 애인, 그리고 남동생 이진석(원빈 분)을 무척 사랑한다. 그에게 이들은 삶의 전부이다. 구두닦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그는 ‘문맹’이다.(영화에는 함께 구두를 닦는 ‘딱새’가 문맹인 그를 놀리기 위해 글자에 대해 물었을 때, 주먹을 치켜들면서 “니, 나한테 글자 물으면 죽인다고 했어, 안 했어?”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에 대한 감독의 이런 설정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문맹률은 무려 ‘78%’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차이를 지적으로 이해할만한 처지에 있지 않았다. 그것을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정치적 신념을 가질만한 사람들은 서울 같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극소수의 지식인들에 불과했다.  

당시 민중들을 움직인 동인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밥’과 ‘생존’이었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이진태의 애인인 김영신(이은주 분)이 ‘보도연맹에 이름을 올리면 보리쌀 2되를 준다고 해서 가입했노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보도연맹은 정부 주도로 조직된 ‘좌익 출신 반공단체’로 이승만 정부는 여기에 가입하면 ‘과거 좌익 활동에 관한 죄과를 묻지 않고 신변의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선전했지만, 인민군이 쳐들어오자 후퇴하면서 ‘적에게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전국적으로 20만이 넘는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학살했다. 그녀 역시 이 때문에 후에 반공청년단의 손에 살해된다. 

우리는 흔히 전쟁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엄밀히 구분한다. 그러나 남이나 북이나 모두 반강제적으로 소집된 민중들이 군인을 구성하는 마당에 그 구분도 모호하다. ‘병사’란, 사실상 무슨 신념이 있어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을 위해 동원된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어린 학생들인 것이다. 감독은 한 병사의 성토를 통해서 민중의 전쟁관을 드러낸다. “막말로 이놈의 전쟁 누가 이기든 무슨 대수야. 난 사상이 뭔지 모르겠는데, 형제들끼리 총질할 만큼 중요한 건가? 일제 때는 나라라도 구하려고 싸웠지. 이건 뭐야!”

이진태가 국방군과 인민군을 오가게 된 것도 이데올로기와는 거리가 멀다. 피난 중 동생과 함께 강제 징집된 이진태는 전공을 세워 태극무공훈장을 받으면 동생을 제대시킬 수 있다는 말에 닥치는 대로 인민군을 죽여 마침내 훈장을 받고 전쟁 영웅이 된다. 그러나 보도연맹 가입과 인민군 부역 혐의로 반공청년단원들에 의해 살해되려는 애인을 구하려다 청년단원을 죽이게 되고, 그로 인해 동생을 제대시켜주지 않는 대대장도 죽이는 바람에 그는 인민군 치하에서 다시 ‘인민 해방’의 영웅이 된다. 

전쟁에는 전쟁의 논리가 있다. 전쟁이 일단 시작되면, 애초의 이유야 어떻든, 서로 죽이고 죽는 동안 증오는 일마만파로 확산된다. 그리고 무참한 죽음들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와 애국적 열정으로 포장된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는 630여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들 중 압도적 다수가 민중이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 때문에 싸우고 죽은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에 의해 강요된 야만적인 이분법 속에서 밥과 생존을 위해 갈팡질팡하다 서로 죽이고 죽었을 뿐이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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