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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Jan 31. 2021

일본의 우경화가 특별히 위험한 이유

영화 <동경심판>에 나타난 일본 침략의 논리

일본의 우경화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197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일본의 우경화는 일관된 흐름이었다. 한 사회가 우경화하는 일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일본의 우경화가 여느 나라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일본의 특이한 사회문화적 구조 때문이다.  

카오쥔수(高郡書) 감독의 영화 <동경심판>은 2차 대전이 종결된 후, 일본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일명 도쿄 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는 11개국의 연합국 재판관들 중 중국 측 판사로 참석했던 메이뤼아오(梅汝璈)가 일본 전범 심판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영화는 중국인들의 반일감정과 애국적 열정에 호소하는 까닭에 상투적이고 편협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영화 속 전범들의 진술은 당시 일본인들을 지배했던 사회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영화 속에서 상하이 총사령관으로 난징 학살의 주범이었던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는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해 이렇게 진술한다. “일본과 중국 두 나라의 싸움은 마치 같은 집안의 형이 참고 또 참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폭한 행동을 그만두지 않는 동생을 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나머지 반성을 촉구하는 수단으로 때린 것입니다. 동생에 대한 형의 행동이 조금 거칠었더라도 그것은 모두 동생을 위한 것입니다. 형은 동생을 사랑하니까요.” 또한 조선군 총사령관이었던 이타가키 세이시로(板桓征四郞)는 이렇게 진술했다. “어떻게 일본 정부가 가난에 찌들어 고통 받고 있는 중국국민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동정과 사랑으로 그들에게 도움의 손을 뻗은 우리가 죄인일수 있습니까?” 

주의해야 할 것은 침략과 학살이 모두 상대방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이런 사디즘적인 논리는 무식의 소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의 A급 전범들은 무뢰한에 가까웠던 나치의 전범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모두 일본 최고 학부를 나온 수재들이었으며, 스스로도 정직한 엘리트라는 자의식이 강했다. 그런 지식인들이 어떻게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반인륜적인 침략과 학살을 자행하고도 한 치의 죄의식도 없이 자신은 “무죄”라고 항변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가 통합된 일본사회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왕이 곧 신이라는 개념은 본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나 고대 로마의 황제에게서나 발견되는 매우 낡은 개념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개념이 위로부터의 근대화 혁명이었던 메이지 유신 이후, 오히려 극적으로 강화되었다. 유신을 주도했던 구특권층이 통일국가의 구심체로서 천황을 옹립했기 때문이었다. 천황은 2,600년을 만세일계(萬世一系)로 이어온 신의 자손으로 국민들에게 교육되었고, 그에 따라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권위가 통합된 현대판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일본에는 아예 천황과 국가를 위한 종교가 따로 있다. 역대 천황과 전쟁 영웅을 숭배하는 신도(神道)가 그것이다. 신도에 따르면 병사도 천황(국가)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되어 ‘신’이 될 수 있다. 

천황(天皇)은 말 그대로 ‘세계의 제왕’이다. 유럽 열강의 도전은 이 제왕에게 도전하는 것이고, 천황은 이 도전으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대동아 공영’의 논리이다. 그로부터 조선이나 중국에 대한 침략은 ‘침략’이 아니라 ‘보호’가 되었다. 나는 일본인들이 특별히 호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화이고, 사회구조이다. 일본처럼 종교적 권위, 정치적 권위, 국가의 권위가 교묘하고도 강력한 통합을 이룬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일본의 그런 사회문화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전범들이 보여준 양심의 무력화, 무책임성, 비주체성은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재생될 수 있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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