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경 Jun 01. 2019

영원한 고기구이 단짝 친구, 파절이

엄마표 파절이 Since 1981




엄마가 들려준 파절이 첫 도전기


1981년 봄이 막 끝나갈 무렵 아버지 직장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부산생활에 한창 적응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엄마에게 이런 얘길 했답니다.


"여기 부산에 오니까 고기 먹을 때 파절이란 게 나오네. 먹어보니까 괜찮더라고. 우리도 집에서 해 먹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음식이었지만 엄마는 사랑하는 남편이 해 달라니까 나름대로 조리법을 상상해가며 파절이를 만들었답니다. 보통 나물 요리를 하듯 집간장, 설탕, 참기름 같은 걸 넣고 무쳐서 밥상 위에 내놓았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결과는 대실패였답니다. 맛이 없으면 아무 말 없이 음식에 손을 안 대는 아버지이신데 그날 엄마가 처음 시도한 파절이를 한번 드셔 보시더니 젓가락을 슬그머니 내려놓으시더랍니다.





엄마표 파절이 시작 Since 1981


그로부터 얼마 후 누나와 저를 데리고 소아과에 다녀오던 날 병원 앞에 있는 소금구이집에 갔다고 합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일하시는 분이 오시더니 눈 앞에서 파절이를 직접 무쳐주더랍니다. 반가운 마음에 유심히 관찰하면서 레시피를 배웠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파채를 어떻게 써냐고 물어봤다고 했지요.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알려주셨답니다.


"이거? 파채칼이라고 시장이나 가게 가면 다 팝니더. 한번 가 보이소."


엄마는 그날로 파채칼부터 구입하고 눈썰미로 배운 그대로 파절이에 다시 도전했답니다. 이번에는 대성공입니다. 지난번과 달리 아버지가 맛있게 다 드셨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에서 고기 먹을 때는 늘 파절이가 같이 밥상 위에 올라왔지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후 30년이 훨씬 넘는 지금까지 이어져온 엄마표 파절이랍니다.




엄마에게 파절이를 배우던 시간들


복학을 앞두고 엄마가 이것저것 간단한 음식을 가르쳐 주기 시작합니다. 그때 파채칼을 처음 손에 쥐고 엄마가 가르쳐주는 대로 파절이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 덕에 누나랑 같이 자취를 하는 동안 아쉬운 대로 엄마 손맛 비슷하게나마 파절이를 해 먹을수 있었지요.


이후 다시 집으로 들어와 생활하면서 요리와 멀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파절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엄마가 몸이 안 좋으셔서 제가 밥을 해야 했던 2012년 어느 날 일입니다. 제 기억에 혼동이 있었는지 참기름과 식초를 넣고 파절이를 해서 엄마에게 보여드렸더니 맛을 보시자마자 피식 웃으십니다.  그리고 레시피를 하나하나 다시 잡아주셨지요.


"식초랑 참기름은 넣지 말고. 파절이는 간단하게 양념 비율만 맞추면 돼. 고춧가루와 설탕은 1:1로, 간은 소금으로 적당히 맞추고, 마지막에 깨소금만 뿌려주면 그걸로 끝, 간단하지? 이젠 잊어버리지 마라."





그리운 엄마 손맛, 파절이


 대학교 입학 후 다시 서울에  와서 고기를 먹을 때 파절이가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지금에야 어딜 가든 파절이가 흔하게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서울에서 고기를 먹을 때는 참기름 소금장이나 쌈장이 전부였지요. 알싸한 파맛이 빠진 고기 맛은 늘 허전하기만 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파절이를 같이 내놓는 집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 역시 오랜 시간 익숙해진 엄마 손맛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1981년 부산 소금구이집에서 엄마가 파절이를 배워온 그날부터 어느덧 3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엄마표 파절이는 늘 한결같았지요. 그리고 엄마가 제게 가르쳐준 그 맛을 다시 식구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특히 야무지게 파절이를 집어 고기를 먹는 조카들 모습을 보면 그 옛날 고기를 먹던 우리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 마음이 어땠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파절이와 같이 고기를 먹을 때마다 엄마를 떠올립니다.


대파가 너무 굵으면 억세서 맛이 없으니까
대파 살 때는 조금 가는 걸 사는 게 좋아.
파절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고, 알겠지?


엄마가 가르쳐준 당신 손맛, 파절이


매거진의 이전글 부추는 첫물이 제맛, 부추무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