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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Jun 08. 2019

이런 커피 한잔 어떤가요?  

조금 느리게, 대안 커피 문화 이야기



'쉼'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맛, 커피


아직까지 자유분방하게 우리 전통차를 마셔본 경험이 없어서일까요? 개인적으로 제가 갖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차에 대한 이미지는 '엄숙함과 무게감'입니다. 정갈한 다기세트, 지켜야 할 다도예절, 그리고 고요함 속에서 차맛을 음미하는 순간까지 엄숙하거나 때론 수련하는 느낌으로 전통차를 만났습니다. 


차에 대한 무게감을 벗어던진 것은 2001년에 떠난 영국 브라이튼 시절이었습니다. 홍차의 나라답게 어학원 자판기에서조차 홍차를 파는 그런 일상이었지요. 카페에 가면 차와 스콘을 자연스럽게 시켰고, 홈스테이 식구들과 같이 먹는 저녁식사 후엔 늘 디저트와 홍차 한잔이 있었습니다. 어쩔 때는 사람 만나는 횟수에 따라 하루에 열 잔 가까이 마시던 때도 있었으니 말 그대로 홍차는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커피가 제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때는 첫 직장생활 시절입니다.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조직문화에 대해 힘들어하던 사회인 초창기 시절,  퇴근길에 동기 누나와 같이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털어내던 순간이 바로 커피 인생 시작점입니다. 그 이후부터 업무를 볼 때나 잠깐 쉬러 나올 때 제 손에는 늘 커피 한 잔이 들려 있었지요. 뒤늦게 시작한 대학원 시절 역시 제 일상에 쉼표를 찍어주는 건 다름 아닌 커피였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커피는 '쉼'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맛으로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커피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된 순간, 커피와 지속가능성


대학원 전공으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를 연구하면서 커피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지금까지 제가 커피를 마셔온 방식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자원순환에 대해 수업을 들을 때는 '커피 소비와 폐기물 문제'에 대해 생각을 했고, 지식채널 E에서 커피에 대한 방송을 본 이후에는 '커피 생산과 생태계 훼손&노동 불평등'에 대해 새롭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할 때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소상공인' 관점에서 커피를 바라보았습니다.   


커피 한 잔에 담겨있는 환경-경제-사회적 가치 의미를 공부하고 정리하면서 이를 다시 강의로 내 보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쉼'을 누리되,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커피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던 시간들입니다. 


커피와 폐기물 문제 - 플라스틱 컵, 빨대, 그리고 컵홀더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대안 커피 문화


제가 지불한 커피값이 정당한 노동 대가를 지불하고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는 농장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방법이 공정무역 커피입니다. 지식채널 E에서 방송을 보고 난 후에 이 주제에 깊이 파고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부생들과 같이 준비한 아름다운 가게 행사를 계기로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날 때면 서로 동의하는 수준에서 가급적이면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지역 소상공인 카페를 더 애용합니다. 그리고 지역주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나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을 발견하면 그곳에서 차나 커피를 마시려 합니다. 


어학연수 시절 하우스메이트였던 터키 친구와 베트남 친구 덕분에 다양한 국제 커피 문화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기나 종이필터를 사용할 필요 없이 전통 드립 도구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베트남 방식은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나눌 정도로 멋진 대안기술입니다. 그리고 체즈베에 커피를 직접 끓여마시는 터키식 커피 역시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방식입니다. 


요즘에는 수동식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이탈리아 제품을 생활 속으로 들여왔습니다. 간단한 휴대용 장치를 이용해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는 일상도 꽤 흥미진진합니다. 온도와 압력이 만들어내는 에스프레소 원리를 배우는 건 덤입니다. 말 그대로 소박한 작은 장치이지만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만족할만한 에스프레소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향유할 수 있는 대안 커피 문화




조금 느리게 즐기는 커피 한잔 같이 하실래요?



잘 알지 못했던 커피 세상에 대해 눈을 키워나가며 커피를 마시는 문화에도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리고 커피에 얽힌 환경-경제-사회적 가치를 지키면서 커피 한잔에 담긴 쉼을 누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계속 연습하는 중입니다. 혼자 있을 때나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 꼭 지키려고 하는 생활방식이기도 하지요.


조금 느리고 불편한 점은 있지만 나름대로 건강한 방식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나고 실험하는 순간은 소소하지만 흥미진진한 일상입니다. 혹시 대안 커피 문화에 관심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조금 느리게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 대안 커피 문화


대전 지역 카페에서 경험한 '커피 한잔과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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