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나를 꺼내는 시간

오후 / 3-3

by 지안

햇살이 천천히 책상 위를 훑고 지나갔다.

빛이 닿는 자리엔 아침에 잠시 덮어둔 노트가 있었다.

몇 장은 이미 여러 번 넘긴 흔적이 있었고,

그 위로 연필로 적어둔 단어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나는 한참을 말없이 그 흔적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연필을 들었다.


무엇을 쓰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지금 내 안에 떠오르는 감정을

어디라도 담아두고 싶었다.


‘요즘 나는 어떤 사람이지?’

‘지금의 나는, 예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한 생각들이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머릿속에 고였다.

말이 되지 않은 채 마음 안에 머물러 있는 감정들.

바로 그런 감정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이

이 조용한 오후의 노트 한 페이지였다.



가만히 써 내려가다 문득,

‘혼자인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도,

무언가를 이뤄내지 않아도,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일까.


예전의 나는 항상 누군가와 나를 비교했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지금의 나를 자주 몰아붙였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그 시선을 안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비어 있는 시간 속에서

내가 어떻게 숨을 쉬는지를 바라보는 일.

그건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작은 수행처럼 느껴졌다.



글을 쓰다 잠시 멈췄다.

연필 끝을 가만히 노트에 대고,

눈을 감았다.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말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고,

평가받을 것도 아니고,

그냥 나만 읽을 수 있는 나의 말.


‘오늘도 혼자지만,

그 혼자라는 사실에 휘둘리지 않았다.’


‘마음이 좀 무겁긴 했지만,

그 무게를 도망치지 않고 바라봤다.’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런 문장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어디 적진 않았지만,

그 감정들은 분명히 내 안에 새겨지고 있었다.



창밖으로 고요한 바람이 지나갔다.

나뭇가지가 살짝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 커튼이 느리게 출렁였다.


나는 다시 연필을 들고,

마지막으로 한 줄을 써 내려갔다.


“혼자인 내가, 조금은 괜찮게 느껴졌다.”


노트를 덮으며, 나는 아주 작게 웃었다.

무언가를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조용히 고백하는

그런 시간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말보다 분명한 마음의 고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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