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 3-4
하늘이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하루를 채워낸 햇살은
풍경 깊숙이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점퍼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길은 조용했고, 바람은 낮보다 더 선선했다.
골목을 지나 들길로 이어지는 산책길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내 발소리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마른 풀잎이나 가지들이 밟혀 바스러지는 소리만이
저녁의 고요 속에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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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주황빛이 붉게 겹쳐진 하늘 아래,
구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고요한 순간이 예전엔 낯설고 무서웠다는 걸 떠올렸다.
누군가 곁에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나를 자꾸만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독은, 어쩌면 나를 채우는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함께 있지 않아도 괜찮고,
혼자 있어도 따뜻할 수 있는 저녁.
그건 외로움이라기보다,
나와 더 가까워지는 또 하나의 감정이었다.
⸻
나는 벤치 하나 없는 작은 공터에 멈춰 섰다.
발밑에는 바람에 밀려온 낙엽들이 모여 있었고,
그 위로 빛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낙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감정은 어쩌면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누군가가 있어야 비로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곁에 없을 때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다는 걸.
고독은 결핍이 아니라
조용한 충만일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
바람이 불어
나뭇잎 하나가 내 어깨를 스쳐 떨어졌다.
나는 걸음을 다시 옮겼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은 저녁 산책길.
그 길에서 나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괜찮아, 혼자인 것도.
그게 내 속도를 찾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하늘은 어느새 어둠에 다가서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봤다.
저 붉음도 곧 사라질 테지만
그전에,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