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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끄적거림

편지 세대가 부럽다.

by 지안

마음을 글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 1분 내외.

마음을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1초.

요즘 메신저 속도다.


충분히 궁리했다 해도

적당한 표현이었는지 노심초사하는 나인데,

내 진심을 온전히 담아내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생각을 글로 옮기며

말의 의미를 여러 번 곱씹어보는

예민함을 지닌 나에게

적당한 의사소통 수단인지 의문이다.


더 괜찮은 표현이었는지,

내 마음을 전달하는데 부족함은 없었는지,

문자를 하면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 많다.

그래서 나는 손편지를 자주 쓴다.

우표를 붙여 보낼 편지가 아닌,

문자로 보낼 짤막한 글들일 지라도,

종종 종이에 글을 써본다.

요즘 같은 시대에 편하지는 않지만

내 진심을 그나마 온전히, 무사히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나는 편지를 쓸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편지의 속도를 특히나 좋아한다.

'종이를 펼치고, 연필을 집어 든다.

어떤 말을 할지 짧게 생각하고,

생각의 흐름대로 적어본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섬세한 표현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평소라면 쓰지 않을 문장 구조가 끌린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완성하면 문자로 옮긴다.'

메신저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다.

심지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나는 이게 좋다.

피곤한 삶이고,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나의 사람들과, 여러 사람들과 통하는 진심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을 이렇게 살지지는 않는다.)


사랑을 할 때 이 문제는 극대화된다.

메신저 덕에 연인과 떨어져 있어도

일상의 많은 순간을 공유하곤 하는데,

틈틈이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나는 '사랑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는다.

물론 사랑해라는 말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고,

표현을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지만,

왜인지 과도하게 남발되는 것이 아닌지 싶다.

메신저로 전하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담긴 진심 어린 마음이 때로 과소평가되는 건 아닐까 종종 조바심을 느낀다.


전화로 전하는 사랑해.

문자로 전하는 사랑해.

편지로 전하는 사랑해.

나는 당연히 편지로 전하는 사랑해가 좋다.

자신이 깎여나가는 것은 마다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연필에게 괜히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인지 편지는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사랑해'라는 추상적인 말을

온전히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손편지에 쓰인 '사랑해'가 아닐까?

그 말을 마음뿐이 아닌 몸으로 간직할 수 있는

가장 특별한 방법은 그뿐이 아닐까?


손편지가 일상이 되는 시대가 또다시 올 수 있을까?

딱히 그 시절을 겪어본 것도 아닌데

투박한 종이 위에 사각거리는 연필로

한 사람의 마음을

쉽게 고칠 수 없는 편지로 옮겨 전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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