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생활을 하던 고등학생 시절에나 매일 챙겨 듣곤 했었던 라디오를 오랜만에 켰다.
그동안 '사는 게 바빠서’란 이유로,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른 미디어 플랫폼에 밀려서 등한시했었다.
이토록 오랜만에 라디오를 켠 이유는 평소와 다르게 잠 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무리 힘들고, 고민이 많아도 잠을 이루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꼭 12시 전에는 잠을 이뤘는데 왜인지 요즘은 12시 이전에 잠 들기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그러다 불현듯, 학창 시절 자기 전 듣던 라디오가 떠올랐다.
나는 95.9 MHz로 주파수를 맞췄다.
한창 듣던 때에는 가수 윤하님이 별밤지기를 맡고 있었는데, 지금 ‘별이 빛나는 밤에’는 작사가 김이나 님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잠자리에 누워 라디오에 집중했다.
청취자들의 신청곡과 짤막한 사연들이 이어졌고, 어느새 끝날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두 줄 일기 사연받는다는 멘트에 나 역시 오랜만에 가볍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잠시 후, 엔딩 bgm이 흘러나왔고, 엔딩 멘트가 이어졌다.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2월 15일 화요일 방송 이제 마칠 시간이구요, ***님이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는 아니었는데 딱히 일기에 쓸만한 거리는 없는 그런 하루였다.’라고 아마 모든 분들이 ‘헉, 내 하루를 베껴다 쓴 일기인가?’ 싶은 두 줄 일기 보내주셨어요.
이런 날이 저는 참 마음에 드는 하루예요. 오늘 뭐했지 하면 딱히 생각나는 것 없는 그런 날 있잖아요? 물론 반짝이는 날도 좋지만, 저는 이렇게 평이하고, 내가 평소 호흡대로 똑같이 그렇게 살면서 지나가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데도, 푹 페인 데도 없는 그런 날들이 이어지는 게 참 좋더라구요.”
나의 두 줄 일기가 별밤 하루 끝에 새겨졌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일기 두 줄이 김이나 별밤지기님의 목소리에 얹어져 내가 동경하던 별밤 주파수를 탔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그날 밤 나의 두 줄 일기에 심취되어 두근대는 마음에 겨우 잠에 이루었다.
다음 날, 그 부분을 다시 들어보았다.
전날에는 감정에 취해 그다지 들리지 않았던 별밤지기님의 멘트가 들렸다. 나의 두 줄 일기보다 거기에 덧붙여진 그 멘트가 훨씬 멋지게 느껴졌다. ‘아, 역시 별밤지기는 별밤지기구나. 그 짧은 시간에 나의 두 줄 일기를 화사하게 칠해주셨구나.’ 하며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공감했다. 평범한 하루가 시간이 지나면 가장 소중했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성인이 된 이후로 종종 라디오를 켜는 날도 있었지만, 별밤은 또다시 나의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