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
그러면서 의도치 않게 생긴 특이한 습성이 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일기를 쓰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일기장을 되돌아보면
슬픔, 억울함, 분노, 후회, 고독과 같은
무겁고, 습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그걸 보고 있자면, 내가 조금 안쓰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조차 해내지 못했던,
일기조차 쓰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시기도 있다.
그때를 다시 떠올려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시기.
뇌 보호 기능이 작동해
그때의 모든 것을 무의식 속으로 봉인해버린 시기.
완전한 암흑의 시기.
나는 상처 난 자리에 약을 바를 때,
주사를 맞을 때,
그럴 때면 어김없이
엄지손톱으로 검지 두 번째 마디를 강하게 움켜쥐고,
고통과 신음을 삼킨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통이 덜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그토록 그렇게 일기를 쓴 것은
조금이나마 고통이 흩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렇게나마 삶의 무게를 털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힘들 때 그토록 더 일기를 썼던 것이다.
지금의 내가 일기를 쓰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그나마 잘 버텨내며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