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본 꽃은 노란 산수유꽃이다. 매화와 살구꽃이 연이어 피었고, 공백 없이 벚꽃도 빠르게 피었다. 봄꽃은 참 빨리 피고 빨리 지는데 벚꽃, 매화, 살구꽃은 특히나 그렇다. 벚꽃은 지난 며칠 동안 출근할 때 모습과 퇴근할 때 모습이 확연히 달랐다. 며칠 만에 만개했고, 낙화했다. 벚꽃 축제 전인 지난 주말 석촌호수 벚꽃은 많이 떨어졌고, 여의도 벚꽃은 완연했다. 이번 주중에 내린 비로 축제가 열리기도 전에 대부분의 벚꽃이 떨어졌다. 이제 길가에는 라일락이 활짝 피었고, 향기가 거리 곳곳을 서성인다.
일주일에 5일, 하루에 8시간을 사무실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일 년 중 가장 기다리던 때인데도 늘 쫓기듯 봄을 맞는다. 봄꽃을 여유롭게 누리기 쉽지 않다.
보통의 경우 일 년 중 한번 주어지는 휴가는 여름휴가이다. 여름휴가가 왜 기본이 됐는지 그 유래를 알 수 없지만 대충 추측해 보면 ‘후텁지근한 날씨에 일하기 싫어서, 능률이 떨어져서, 일 년 중 딱 중간 시점이어서’ 정도 아닐까. 충분히 납득될 만한 이유이고, 필요성도 인정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름에 가장 시원한 곳은 보통의 경우(사무직) 일터가 아닐까?
나는 오히려 봄, 가을 휴가를 원한다. 일 년 중 가장 찬란할 시기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것은 직장인으로서,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너무나 서글픈 일이다.
날이 풀린 후 점심시간에 15분 정도 산책을 한다. 운 좋게도 사무실 근처에 공원이 있고, 그곳에 몽실몽실 솜사탕처럼 핀 벚꽃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다. 벤치에 앉아 살랑거리는 벚꽃, 바람에 실려오는 포근하고 푸릇한 봄의 향기,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꽃놀이하는 새, 간드러진 그들의 지저귐을 멍하니 듣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말랑해지고, 싱숭해진다. 이토록 포근한 봄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 척박한 겨울을 견디었구나 싶다. 그리고 내 마음을 봄에 비추어 바라보며 나의 계절은 언제일까 생각해 보지만, 잘 모르겠다.
너무나 맛있는 것,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 또는 너무나 슬픈 것, 고통스러운 것들은 말과 글로 표현해 내기 참 힘들다. 좋은 감정은 최대한 누리고, 힘든 감정은 최대한 견디는 것이 최선이다.
벚꽃은 나에게 이토록 크나큰 행복을 주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 것 같아 무력하다. 내가 그들에게 당장 직접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 환경과 자연을 지키려는 노력이 곧 그들을 위한 가장 최선의 일이겠지.
하늘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그리워해도 소용없다.
지나간 모든 것은 부서진 별이다. 조각난 별빛들을 간신히 모아도 붙일 수 없는 노릇이다. 눈앞에 돋아날 새순을 보지 못한 채 요행을 바라며 흔적 조각을 줍는 모습은 얼마나 처량한지. 봄은 먼 하늘보다 땅에 애정 어린 시선을 두어야 하는 찰나이다.
나의 온몸은 부드러운 실크 옷을 두르고 낮잠을 갈구하는 아이처럼 온화한 봄 햇살에 나른해진다. 나의 열 손가락은 곡물을 긁어모으는 갈퀴처럼 부드러운 봄바람을 수확한다.
이번 봄은 여느 봄보다 더 찰나였다.
이제 늦봄, 초여름 연푸른 잎에 기대어본다.